12~13 일차, 2019년 9월 6일 ~ 7일

오늘의 주요 이동 경로

이르쿠츠크를 떠나 노보시비르스크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 거리는 약 1,840km 이고 하루 하고 몇 시간이 더 걸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 3일 넘게 기차를 타 본 경험이 있어서, 크게 부담 갖지는 않았다. 지난번 타쿤 아저씨가 말해준 대로 하루 밤을 자고, 하루 낮을 보내면 도착하는 일이다.

아, 노보시비르스크에는 왜 가냐고? 방문하는 이유가 도시에 있던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서이다. 이곳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차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D+12 : 노보시비르스크행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먹을 것을 사 들고 기차역으로

지난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3박 4일 기차를 탈 때 많은 먹을거리를 사서 기차에 올랐던 것처럼, 하루하고 조금 더 넘는 시간을 가는 이번 기차에서도 먹을 음식을 미리 구매해뒀다. 구매한 물품은 지난번과 비슷한데, 궁금한 사람은 찾아보자. (링크)


이 열차는 중국 베이징에서 온 열차고 모스크바까지 간다. 우리나라 열차만 다니는 우리나라에만 있었더니 이런 모습 조차 새롭다.

bike
역 대합실 한 켠에는 페니어가 여러 개 부착된 여행용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시베리아 자전거 여행을 하시는 분이 계신가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자전거에도 페니어를 조금 달고 멀리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먼 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기차 도착 지연 시간

분명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기차가 들어올 플랫폼 번호가 전광판에 표시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때 전광판에 지연 시간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지연 시간이 꽉 차면 다시 늘어나고 늘어나기를 반복했다

“01:20”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었다. 도착 10분 전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가 갑자기 1시간 20분이 지연되었다는 표시를 띄운다…?!?! 러시아는 지연의 스케일이 다르다 ㅋㅋㅋㅋ 1시간 이상의 엄청난 지연이 아니면 전광판에 제대로 표시해 주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 때 부터 1시간 20분이 지났다. 그런데 기차 플랫폼이 표시될 생각을 안 하고 10분이 추가 지연되었다. 1시간 30분으로 늘어났다. 10분을 기다렸다. 1시간 40분이 되었다. 또 10분을 기다려 시간이 차면 지연 시간이 늘어나기를 여러차례 반복하다 2시간을 채우고서야 플랫폼 번호가 표시되고 기차가 들어옴을 알렸다.
이거 참.. 본의 아니게 역에서 정말 오래 기다리게 되었다.

아 참. 이 사진의 킬링포인트는 2시간을 채운 지연 시간이 아니라, 맨 마지막 줄에 있는 10시간 지연된 기차이다.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10시간이 지연되는걸까? ㅠㅠ ㅋㅋㅋㅋㅋ

이게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울란-우데 역 이후 바이칼 남단으로 연결된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아주 높은 지대에 건설되어 있어서 낑낑대면서 올라가야하는데, 이것 때문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 열차가 많이 지연된다는 말이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오른 기차

train
드디어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차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이름을 키릴문자로 소리나는대로 적어서 넣었기에)신원 정보 불일치 등으로 탑승에 뭔가 문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승무원용 단말기와 여권을 대조하면서 잠시 확인하시더니 바로 태워주셨다. 앞으로 몇 번 타 보면서 느꼈는데, 신원 확인의 엄격한 정도는 승무원 개인 재량으로 보인다.

활기가 넘치는 3등석 객차, 그러나..

지난번에는 2등석을 이번 기차에서는 3등석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각 객실을 나누는 칸막이가 없다 보니 객차 내부에서 사람들의 이동이 훨씬 더 자유롭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대화 상대를 찾는다. 뭔가 객실이 나뉘어 있는데 다른 객실에 놀러가면 무단 침입(?)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ㅋㅋㅋㅋㅋ 3등석에는 그런 장벽이 없어 모두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게 또 독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은 든다. 왜냐하면 굳이 말이 잘 안 통하는 우리같은 외국인과 마주하지 않아도 훨씬 더 편하게 함께할 사람이 많아서 대화에 많이 끼지는 못했던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다 “혹시 중국인이세요?” 물어본 것 말고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반면, 2등석의 경우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같은 객실에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야만(?)하는 상황이 늘어난다. 이런 면에서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고 그 날 상황, 승객 구성 등 변수는 더 많은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승객과 친해지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더 잘 놀 수 있다(!).

2등석 객차에 비해 더 역동적인 분위기의 3등석 객차

어떤 분께서는 악기를 들고와 연주를 하셨고, 그 리듬에 맞춰서 복도에 나와 춤을 추고 가신 재미난 분도 계셨다. ㅋㅋㅋ

새로운 도구, 새로운 먹거리

새로 사 온 숟가락이 있어 더 먹기 편해진 음식들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가게 주인분으로부터 쉽게 구한 숟가락 포크가 부착된 맥가이버로 더욱 많은 먹거리를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그 전에도 차장님께 찻잔과 티스푼을 빌릴 수 있었긴 한데, 번거로움이 줄어들었다.

wierdSpoon
아니 근데 컵라면에서 불량품 포크가 튀어나왔다! ㅋㅋㅋㅋㅋㅋ 숟가락을 비닐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들어와버려 같이 눌린 것 같다. 나머지 반쪽도 다른 라면에 들어가 있을까? ㅋㅋㅋㅋ

westSiberia
다시 시베리아의 황량한 초원이 펼쳐지고, 오늘의 해가 지기 시작한다.
시베리아횡단철도에서 해가 진다는 것은, 러시아 사람들이 잠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때 맞춰서 나도 잠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3등석이라, 작은 독서등을 제외하면 조명의 개별 통제도 안 된다!

D+13 : 그냥 사라진 것 같은 오늘 하루

시베리아횡단철도 3등석 창측 2층 침대 후기

시베리아횡단열차 3등석은 2등석 객실 하나와 해당 객실 앞의 복도를 포함하는 공간에 침대 4개가 아닌 6개를 설치해 둔 형태로 되어 있다. 복도쪽 창측에 위 아래로 두 개의 침대를 더 설치해 두었다. 그런데 이쪽 침대는 나머지 4개 침대와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 길이가 짧다
    • 기본적으로 침대 시트 길이가 짧다
    • 양 끝으로 칸막이가 있어 침대 바깥으로 발을 뻗는것이 불가능하다
    • 결코 크다고 말할 수 없는 키를 가진 나임에도 불구하고 침대가 비좁게 느껴진 적도 있었으니 키가 큰 사람들은 더 큰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 1층 침대는 탁자 겸용이다
    • 침대를 펴면 탁자를 이용할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 별로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저것 짐이 많은 경우에는 테이블에 조금 늘어두고 잠에 들 수도 있는데 그게 불가능해 자기 전에 모두 치워두고 자야한다. 치우는 것이야 하면 되지만, 차장님께 컵을 빌려올까 싶다가 침대를 접으면 마땅히 놔둘 곳이 없을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일부 객차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그 외에도 좌석마다 제공되는 전기콘센트가 멀다던지 등의 불편함이 더 있을 수 있다. 아마 인터넷에 나온 후기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위쪽에서 한 이야기 다 필요 없는 이야기다. 결론은 한 줄로 쓸 수 있다.
한 줄 요약 : 3등석에 탈 것이라면 창측에 붙어 있는 진행방향과 나란한 좌석은 여러모로 불편할 수 있다

시베리아의 대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

이제는 러시안 타임에 적응했나보다. 적당히 사람들이 일찍 잘 때 시간 맞춰 일어나고 아침 일찍 적절한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일어나 보니 창 밖으로 꽤 높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큰 도시가 보였다.

내하항을 보유하고 있는 예니세이강변의 큰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라고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는데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게다가 예니세이 강을 통한 수운을 가능하게 하는 내하항도 설치되어 있다.
직접 와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시베리아의 주요 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텐데. 공간적으로 가까워질수록 새롭게 배우는 것도 참 많았다.

이 역에서 오랜 시간 정차하기로 계획되어 있긴 했지만, 지연으로 인해 잠깐 정차하고 다시 떠났다. 큰 도시 답게, 이 도시에서 많은 승객이 내리고 다시 탔다.

이 나라 사람들은 민트색을 좋아하는 걸까?

mint
이르쿠츠크 역도, 지나가다 마주친 이 역도, 곧 도착하게 될 역도 모두 민트색 페인트로 도색되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이 민트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민트색이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에 잘 맞는 색인가? 아니면 이 도료가 가장 저렴해서 그랬나? 아니면 어떤 상징성이 있는 것인가? 궁금했다.

제 시간에 도착한 노보시비르스크, 그리고 첫 인상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음에도 하루 만에 지연을 모두 회복했다. 놀랍다.

저녁 7시 40분, 해질녘에 도착했다. 분명 이르쿠츠크에서 두 시간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보시비르스크 역에는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3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놀라웠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닌 것이, 늦게 도착한 역에서는 정차 시간을 10 ~ 20 분 줄이는 식으로 지연 시간을 줄여나간다. 예를 들면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서 60분 정차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연착했다면 15분만 정차하는 식으로.


이틀동안 함께했던 차장님. 승무원복이 점점 두꺼워지는게 보인다. 지난번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하복을 입고 계셨는데.
더 깊은 시베리아, 더 깊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게 느껴진다.

novo

노보시비르스크 기차역이다. 굉장히 크다. 도시가 커서 자연스럽게 큰 역이 들어섰다기 보다 그 반대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없던 소나무 숲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놓이고 중앙아시아로 가는 철도가 놓이면서 교통의 요충지로 거듭난 이후로 각종 러시아 중요 시설을 유치하며 시베리아 중심 도시 위치를 가져가게 되었다.

아마, 다음 포스트에서 다시 이야기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의 첫 인상


노보시비르스크는 러시아의 제 3 도시이다. 제 1, 2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밀려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고층 건물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세련된 도시라는 인상이 들었다. 앞선 두 도시(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에 비해 매연이 풀풀 풍기는 자동차의 수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정말 대도시에 온 느낌이 들었다. 넓직하게 놓인 대로 변으로, 세련된 풍경이 펼쳐졌다. 조경용 분수와 화단이 정말 잘 갖춰져 있었다. 도시 한 쪽에서는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인지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했다.

bank

또, 한 가지 새로웠던 모습이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이 우릴 다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기 때문이다. 등에 붙어 있는 (거대한)배낭이 신기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그보다 이곳이 외국인이 별로 오지 않는 동네여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hostel
호스텔 검색 사이트에서 알아보고 간 숙소다. 주상복합 오피스텔 1.5층에 있던 Park Hostel인데 나름 지낼만하다. 숙소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감수성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문제이므로 하진 않으려 한다. 크게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위치가 대단히 좋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최중심부에 위치해 어디든 가기 좋다. 문 열고 나가면 국립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 및 발레 극장(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을 가볍게 무시하는 러시아 최대 규모)이 보이는 곳에 있다. ㅋㅋㅋㅋ

그런데 굳이 노보시비르스크에 올 사람이 있긴 할건가..? ㅋㅋㅋㅋ

늦은 시간에 먹는 피자

이르쿠츠크 마트에서 사 온 먹을거리가 조금 부족해서 기차에서 먹은 마지막 끼니가 조금 모자랐다. 기차에서 내린 이후로도 숙소를 제대로 찾지 못해 조금 돌아다니느라 저녁 때를 놓쳤고, 숙소에서 조금 쉬다 보니 10시가 넘었다. 다행히도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는 (술집이 아니라도) 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이 도처에 많았다. 같은 건물 상가에 있던 피자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음에도 하루 만에 지연을 모두 회복했다. 놀랍다.

이제는 러시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분명 기차를 하루 하고 일곱 시간이나 더 탔는데도 불구하고, 오후의 이르쿠츠크에서 저녁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바로 시간을 건너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점점 익숙해진다. 그만큼 여행에서 편안하게, 별 탈 없이 다니고 있다는 증거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함은 계속 경계를 하고 싶다. 항상 열린 시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싶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