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일차, 2019년 9월 8일

D+14 : 시베리아 최대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의 주말

시베리아의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Новосибирск)는 새로운 시베리아의 도시 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노보-니콜라옙스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소비에트 시절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련 붕괴 이후 옛 이름으로 돌아간 도시도 있지만(레닌그라드 ->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는 옛 소련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소련 서기장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칼리닌그라드와 같이 정치적 목적으로 소련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방문한 지역(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후지르 마을)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은 도시이다. 이곳 노보시비르스크에는 2010년 인구조사 기준 147만명의 사람이 살고, 2018년 현재 추정치는 160만명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광역시에 준하는 체급의 도시인 것이다. 시베리아 최대 도시이며, 러시아 제 3 도시이다. 시베리아에서 지하철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도시이다.

아무튼, 도시가 크고 사람이 많아 시내를 오가는 사람이 참 많았다. 주말이라서 훨씬 더 많은 듯 했다.
하도 이 도시가 재미 없고, 볼거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해서 뭘 해야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해보고 왔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 고민이 있었기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밤에는 잘 몰랐는데 낮이 되니 파크 호스텔의 위치가 엄청나다는게 다시 한 번 느껴진다. 문을 열고 나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러시아 최대 규모의 극장인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이 보인다. 저 극장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에 펼쳐진 거리들이 이 도시의 중심이다. 어디든지 걸어가기가 편했다.
(물론 이녀석은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걸어가곤 했다. 하루에 26km 걸어다닌 적도 있으니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ㅋㅋㅋㅋㅋ)

노보시비르스크 센트럴파크

자연스러워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도심 속 숲, 비둘기 친화적(?)인 공원

숙소의 이름이 “PARK HOSTEL”이고, 어제 간 피자집의 이름이 “Park Pizza” 였던 이유는 빌딩 바로 옆에 Central Park(어… 이거 그 나라의 그 도시에도 있는거 아닌가? ㅋㅋㅋ)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에 찾아가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아침을 먹고 오려고 근처의 큰 쇼핑몰로 향하던 중에 지나가게 되었다.

이르쿠츠크에서도 느꼈는데 도시 곳곳에 이렇게 사람이 크게 손 대지 않은 자연 친화적인 공원이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 시내에 있는 공원은 부지에 나무를 억지로 옮겨 심어둔 어색함이 있다면, 여기는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비둘기가 싫다고 애써 내쫓는 대신 (장식용이겠지만)비둘기가 살 수 있도록 새집을 지어준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둘기를 열심히 다 쫓아냈는데, 이 나라는 조금 더 비둘기 친화적이구나(?) 싶었다.

거기에다 신나게 뛰어가는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모를 친구도 볼 수 있었다.

공원의 반대쪽 끝으로 계속 걸어가니 작은 놀이기구들이 설치된 구역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놀이공원은 아니지만 미니 바이킹 같은 것을 설치해 둔 것과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대부분의 놀이기구가 멈춰 있었고, 대기중인 놀이기구도 타는 사람이 없어 운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장소지, 애써 찾아온 장소는 아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해도 여기는 굳이 찾아서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가고싶다면, 아래에 소개할 다른 공원에 가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공원을 나와 길을 한 번 건너면 스타디움이 나온다. 크게 서 있는 간판을 보니 노보시비르스크를 홈으로 하는 축구 구단이 있는 모양이다. 그 옆으로는 인라인스케이트, BMX 등을 탈 수 있는 경사로 코스도 설치되어 있고 카트를 탈 수 있는 서킷도 마련되어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이 나와서 열심히 놀고 있었다. 이거 말고도 시내를 걷다 보면 애들이 퀵보드를 즐겨 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갤러리아 몰에서 만난 대한민국


숙소에서 10분 ~ 20분 정도 걸어 갤러리아 몰에 도착했다. 굉장히 큰 쇼핑몰이었다. 우리나라 백화점보다는 약간 캐주얼한? 그런 느낌의 쇼핑몰이었다.
건물 외벽에 입점해 있는 가게 간판이 많이 붙어 있다. 많은 가게들 사이에서 햄버거집을 발견했다. 적어도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었다!

쇼핑몰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라! 제대로 본 게 맞나…?

이게 뭐야! 쇼핑몰 로비에서는 한국 문화 체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한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을 서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한 모양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지나가던 버스에 붙어 있던 한국 관광 광고를 본 적 있는데 여기서는 이런 것도 하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존재 조차 잘 모를 법 한 이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한국 관광 홍보를 한다는게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오랫동안 서서 바라보며 부스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의 어떤 분께서 말을 걸어 오신다. 뭐라고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대충 한국인인걸 들켜버렸고(?!?!) 한 번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말은 잘 안 통하니 손가락으로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길래 얼떨결에 사진도 같이 찍게 되었다. ㅋㅋㅋㅋ

엑소나 방탄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노보시비르스크의 초초초초 희귀템 한국인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관심이 쏠리는(?) 기이한 상황을 경험을 했다. 뭔가 그 자리에 오래 있으면 조금은 귀찮아질 것 같아서 빠져나왔다. ㅋㅋㅋㅋ
원래 여기 온 목적을 되살려야지…


그렇게 조금 당황스러웠던(!) 한류 열풍을 뒤로 하고 식당들이 모여있는 코너로 와봤다. 패스트푸드계의 3대 거장(?) 맥도날드, 버거킹, KFC가 모두 입점해 있다. 굉장하다 ㅋㅋㅋ

photoBooth
햄버거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나서 쇼핑몰을 잠깐 더 둘러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로비의 한국 부스 앞에서 괜히 얼쩡거리다 정체를 들켜버리는 일 없이 빠르게 빠져나왔다.

여기가 정말 시베리아야?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

빨래가 다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다른 곳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보았다.

대로 중심으로 난 산책로. 도스토옙스키 흉상도 있었다.

갤러리아 몰에서 한 블럭만 옆으로 가면 또 다른 큰 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에는 왕복 6차선 도로 중심에 곧게 뻗은 인도가 나 있다. 인도 주변으로는 잔디와 나무가 심겨져 있어 산책하거나 쉬기 좋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전에 방문했던 나머지 두 도시보다는 상황이 많이 낫지만 여전히 공기 질이 좋지 못하다… 도로변에서는 여전히 진한 매연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아무튼, 공기만 빼면 미관상으로는 꽤 괜찮다고 느껴지는 모습이다. 이쪽으로 쭉 걸어 올라가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흉상도 만나볼 수 있다.
초등학생 때 그의 작품 죄와 벌을 읽다가 난해해서 그만두었는데 그 뒤로 다시 읽지 않았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와 나 사이의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아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조금 이해한 상태로 동상을 마주했더라면 감회가 또 새로웠을 것 같다. 내가 빈에서 아무 것도 아닌 베토벤 하우스에 가서 무한한 감동을 받았던 것 처럼 말이다.


오래된 차에서 매연 풀풀 날리던 블라디보스토크, 덜컹거리는 전차와 흙먼지로 덮인 도로가 있던 이르쿠츠크의 모습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앞서 방문했던 두 도시는 정말 엉망 진창이었는데 이 도시에는 무려 전차 선로가 일반 도로와 공유될 수 없도록 노반이 살짝 올려져 있는 등 굉장히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타 보지는 않았지만 소리만 들어봐도 진동이 훨씬 덜 할 것 같았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정말 시베리아 맞나?’ 큰 규모의 질서있는 활기찬 도시를 보니 마치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도 되는 도시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역시 러시아 제 3 도시이자 시베리아 최대 도시라는 값은 제대로 해내고 있는 듯 했다.

시베리아 문화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는 각종 문화 시설이 많다. 시베리아의 제 1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수도 등 유럽 지역에만 몰려 있던 시설들이 분산된 것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이곳 노보시비르스크에 지어졌다.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

이 건물은 노보시비르스크에 왔다면 안 볼려 해도 안 볼 수 없는 건물이다. 무려 러시아 최대 규모의 극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꽤 나 있는 볼쇼이 발레단이 있는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보다도 더 크다. 분명 굉장히 높은 건물인데도 옆으로도 넓어서(!) 사진으로는 얼마나 큰지 쉽게 예상되지 않는다. 아쉽게도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오페라 및 발레 공연을 위한 악단, 발레단 등이 상주하고 있어 상시 많은 공연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곳의 발레단이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몰랐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몇 십 만원은 될 티켓이 여기서는 몇 만원 수준으로 변해버린다. 좋은 퀄리티의 공연을 저렴하게 좋은 자리에서 보기가 좋다. 제일 좋은 좌석도 10만원을 잘 넘지 않는 듯 했다. 정말 공연 하나만 보고 비행기 타고 여기로 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ㅋㅋㅋ (게다가 맛있는 음식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으니 좋고 말고!)

아쉽게도, 딱 노보시비르스크에 머무르는 동안만 극장에 공연 일정이 없어서 좋은 혜택(?)을 누리진 못했다. ㅠㅠ
(홈페이지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공연날을 모조리 피해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자주 열린다 ㅋㅋㅋ)

공연 정보는 https://novat.nsk.ru/en/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국립 노보시비르스크 미술관

미알못이 미술관에 왔다. 그래도 재미있다.

지난번 기차에서 만난 칼리닌그라드 출신 아주머니께서 노보시비르스크에 꽤 괜찮은 미술관이 있다고 소개해주셨는데, 바로 여기다.
평소 미술관에 가는 것을 즐기진 않아 지금까지 미술관에 가 본 적이 다섯 번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신기하게 이것저것 보고 오는 스타일이라 한 번 찾아가 보았다.

입장료를 내려고 매표소에 국제학생증 겸용 카드를 내미니 “Are you student?”하고 되묻더니 학생 할인 요금이 있다고 그렇게 발권해주겠다고 하셨다. 원래 입장료가 또 그렇게 비싸지 않아 애써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것도 하나 하나 안내해 주시니 참 감사했다. 이후로도 이런 곳에 들어갈 때마다 한 번씩 학생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정책이 조금씩 다른 듯 했다. 러시아 학생에게만 적용되거나 아니거나.

정교회 관련 미술 작품부터 시작해서 유리 공예품까지 다양한 장르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 전시실마다 상주하고 있는 도슨트가 있어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혼자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 일부러 설명을 요청하지 않아서 영어로 설명이 가능하신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러시아어로는 가능하시다! ㅎㅎ

규모 면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쥐 박물관 등 러시아의 다른 미술관에 비해 확실히 밀릴 수도 있겠으나, 장르도 다양하고 수준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라 볼 거리가 꽤 있다. 오히려, 에르미타쥐에서 하나하나 다 보기도 힘든 비슷한 유형의 작품을 압축시켜 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이쪽이 조금 더 나을 수도 있다.

노보시비르스크 역사 박물관


박물관은 한낮에 방문했지만, 건물 사진은 그 때 찍지 않아서 저녁에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노보시비르스크 모든 역사가 담긴 박물관

노보시비르스크에는 꽤 많은 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이 있다. 그 중에 이곳을 찾아간 이유는, 이 박물관에서 노보시비르스크 도시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이 도시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한 번에 다 볼 수 있다.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도 참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관람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근대에 처음 지어진 도시라 옛 사진 등의 사료들도 풍부해서 참 볼만했다. 100년 전 아무 것도 없던 소나무 숲 사진, 거기다 세운 최초의 건물인 성당,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지나는 철교 건설 과정 등 생생한 자료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사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도시가 건설되는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많겠는가!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 혼자 우뚝 서 있는 예배당 사진 등의 생생한 자료를 보면 당시 도시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이 훨씬 더 잘 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가보면 좋을 것 같다. Novosibirsk State Museum of Local History and Nature 검색해서 가면 그곳이 맞을 거다. 지하철역 출입구 바로 옆에 있다!

2층에는 현재 노보시비르스크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부터 시작해서 몇몇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이미 노보시비르스크 미술관에 다녀온 터라 그렇게 큰 흥미는 느끼지 못했다.

시내 공원의 주말 풍경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에서 길을 건너 오비강 쪽으로 아주 조금만 걸어 오면 큰 공원이 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낮에 공원으로 놀러 나왔다.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주말의 노보시비르스크

어린이용 장난감 자동차를 빌려주는 분도 계셨고, 미술 퍼포먼스를 하시는 분도 계셨고, 아마추어 뮤지션이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주의! - 이런 모습은 주말에만 볼 수 있음!
(평일에도 와봤는데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ㅋㅋㅋㅋ)

아, 참. 공원에서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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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등에 태극기를 두르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외국인(특히 동양인. 이르쿠츠크에는 몽골계 사람들이 꽤 있는 듯 했다) 하나 제대로 보기 힘든 도시인데 태극기를 두르고 있는 사람이라니?
무슨 상황인지 잘 몰라서 지나치긴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한 번 물어볼 걸 그랬다. 한국인인지. ㅋㅋㅋㅋ 노보시비르스크에 한국인이라니. 굉장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 여행자(좀 더 정확히는 블로거 등의 인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인줄 알았으나, 이건 2019년 초 기준이고 19년 말부터 시작해 점점 더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쌀국수

아침을 조금 늦게 먹었던 터라 점심도 조금 늦게 먹었다. 서너시쯤 쌀국수를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쌀국수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에도 맛있게 잘 먹던 음식이라 빠르게 후루룩!

오비 강을 건너는 철교, 도시의 시작을 알리다


노보시비르스크 가운데로는 오비 강이 흐른다. 오비 강은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원해 북국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으로, 강의 길이와 유역 면적 모두 적어도 열 손가락에 들어가는 길고 거대한 강이다.
특별한 계획 도시가 아닌 이상, 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함에 가깝다. 그러나 오비강이 노보시비르스크에게 주는 의미는 당연함 그 이상이다.

시베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반면, 이르쿠츠크는 조금 역사가 깊은 도시다), 노보시비르스크 역시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는 오비 강변의 평범한 소나무 숲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베리아횡단철도가 건설되며 이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건설되었다. 거기다가 깊은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투르케스탄-시베리아 철도 또한 건설되어 교통의 요지로 거듭났고, 잇따라 거대한 수력발전소와 공업지대가 들어섰으며 수도권에만 있던 과학 연구소들이 비수도권 최초로 여럿 설치되었다. 이런 시설이 집중되어 건설됨에 따라 시베리아의 중요한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렇다. 노보시비르스크의 모든 것은 오비 강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철교로부터 시작되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도시의 출발점이 된 오비 강의 옛 철교 일부분을 기념으로 남겨두었다. 마치 성지순례하듯 이곳을 가보고 싶어져서 그쪽으로 향했다.

오비 강가로 향하는 길. 대로를 따라 쭉 내려가면 된다. 가는 길에 여기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이 보인다.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페라 극장 앞의 대로를 따라 강가로 쭉 내려오면 다다를 수 있다. 강가에 거의 다 와서 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신호등을 좀 많이 건너야하긴 했지만.
드디어 저 멀리 오비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몇 개와 일부만 남겨진 옛 철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도시의 첫 출발을 알리는 옛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철교가 일부 남아있다

이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다리가 여기 놓여 있다. 과거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일부분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바로 옆에 더 넓고 튼튼한 새 다리가 건설되어 많은 열차들이 오간다.

“도시의 기원”, 마치 고향과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 이 강가로 나와 산책하고 운동하고 쉬는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즐기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이녀석! 저 다리가 주는 의미에 과몰입했구나! 정작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읍읍 ㅋㅋㅋㅋㅋ)

역사가 담긴 다리 하나만을 보고 여기를 찾았는데, 강 너머로 보이는 석양도 참 아름다웠다.

오비 강 뒤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석양, 옛 횡단철도 철교 옆에 서 있는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이 이 도시의 시작이었던 만큼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있는 어느 곳에나 다 있다는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상이 오비강 철교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이 도시의 “출발점”인 오비강 구경을 적당히 마치고 다시 천천히 걸어 숙소로 향했다. 숙소 가는 길에도 몇몇 볼거리들이 있었다.

아 참, 노보시비르스크에는 폭주족(?)이 생각보다 많다. 출력을 강제로 높인 개조 차량과 바이크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보기와는 다른, 흥 많은 사람들

서로 다른 두 공원에서, 음악을 틀어두고 다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이다. 러시아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여러 공원에서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것들을 봤다. 바로 공원에 모여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는 모습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좀처럼 잘 웃지 않아 항상 무뚝뚝한 표정인 경우가 많은데, 보기와는 다르게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문화가 있구나 싶었다.

정말 볼 것 없을 때를 대비했던… 러시아 루블화 기념상

볼 게 하나도 없을까봐 이런거라도 보고 와야하나 싶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로화 기념상도 보러 가는데 이상할 건 없지!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하기 전부터 하도 “노~잼의 도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여기에 있는 이틀 동안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미리 찾아둔 방문장소였다. 루블화 기념상.

사실 할 것이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여기를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하루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마침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있길래 한 번 보고 왔다.

이거를 굳이 왜 보러 가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반대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로화 기념상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둘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한 쪽만 이상하다면 편파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다 ㅎㅎ

레닌 동상에서 느껴지는 모순

내가 방문한 러시아 도시 여섯 곳 중 가장 웅장한 레닌 동상이 여기 있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 하면 또 이 거대한 레닌 동상이 빠질 수 없다. 여태껏 본 레닌 동상 중 가장 웅장한 것은 물론, 이후로 더 방문한 세 개의 도시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동상을 만나지 못했다.

아무튼, 동상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러시아 어딜 가나 레닌의 동상은 높은 제단 위에 올려져 있다. 단독으로 서 있는 동상은 그렇다 쳐도,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동상에서는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의 함정” 이 드러나는 것 같아 보인다.

노보시비르스크의 레닌 동상 좌우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쌓운 군인들과 사회주의의 중심이 되는 계층이었던 농민과 노동자를 본뜬 것 같아 보이는 동상이 나란히 서있다. 레닌은 좌우로 서있는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높이 서 있고, 더 앞으로 나가 있다. 마치 뭔가 모를 체제의 모순성을 스스로 드러낸 듯 하다.

이것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해보려 했는데, 적절한 장소가 아닌 것 같다. 동구권 국가, 유고슬라비아를 모두 지난 시점 쯤에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오페라 극장 앞의 레닌 동상에 도착했다는 것은, 숙소 코 앞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긴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오비 강가 구경까지 마치고 천천히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거의 다 어두워졌을 때 쯤 숙소로 돌아왔다.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긴 하지만,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아직까지 8시까지는 해가 완전히 지지 않는다.
그럼 8시 쯤 해가 완전히 저물었으니 이제 하루가 끝나는 것이냐?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랑 이르쿠츠크에서는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 밖으로 나가 볼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노보시비르스크가 주는 분위기는 달랐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 가는 저녁이라도 시내에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편이다. 많은 음식점들이 자정까지 영업을 하고, 술집을 겸하는 경우 더 늦게까지 영업하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 요리를 파는 식당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베키스탄 스타일의 요리를 파는 식당에 왔다.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양고기 위주의 요리를 주문했다. 샤슬릭, 삶은 양고기에 토마토 소스에 곁들인 요리, 양고기 마늘 볶음밥을 주문했다.
이렇게 푸짐하게 먹었을 뿐만 아니라 맥주도 거의 1리터 정도 마셨던 것 같은데 인당 2만원 정도 나왔다.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도 이정도 물가라니. 정말 여기서 공연 보고 맛있는 것 먹고 가는 것만으로 비행기 값은 다 확보하고 갈 것 같은 느낌이다.

재미 없는 도시라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하는 것 치고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한 개의 도시를 여행해야 하는 다른 사람에게 차마 이 도시를 여행지로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오페라나 발레 공연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까. 아님 이르쿠츠크와 엮어 방문하는거면 또 괜찮을지도(하루 하고 일곱 시간이면 오갈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기회가 된다면 길지 않아도 좋으니,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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