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일차, 2019년 9월 9일 (월)
D+15 : 시베리아 과학 연구 단지 아카뎀고로도크
근교의 과학 연구 단지 아카뎀고로도크
지난번 이야기에서도 끊임없이 언급한 이야기이지만, 이곳에서 머무는 3일동안 별다른 할 일이 없을 줄 알고 이것저것 끌어모아 어떻게든 할 일을 만들어보려 했고 어제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하게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눈을 돌려 근교의 과학 연구 단지가 모여 있는 지구인 “아카뎀고로도크”로 다녀오기로 했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라, 도시에서 일반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여러 시설들이 잘 갖춰진 편이다. 평소 생활하듯이 지내면 절대 이상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아카뎀고로도크는 시베리아의 중요한 과학기지이다. 본래 소련의 중요 시설들은 모두 유럽쪽의 수도권에만 설치되어 있었는데, 비수도권으로는 이곳이 최초다. 거기다가, 냉전 시절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때 소련이 띄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투니크도 이곳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소련 시절 이곳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이곳도 결국엔, 지금의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를 있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본인이 공부하는 분야도 대충 비슷한지라, 더 관심이 갔다.
(사실 이게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아카뎀고로도크로 향하는 길!
아카뎀고로도크로 가는 방법은 위의 사진과 같다. 구글지도가 예상한 시간만큼 오래 걸리지 않아 한 번 다녀올만하다.
(거리가 그렇다는거지 절대 저기 볼만한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말하긴 어렵다… ㅋㅋㅋㅋ)
노보시비르스크 지하철
시베리아의 유일한 지하철이라고는 하지만, 노선은 두 개 역은 고작 14개 뿐인 반쪽짜리 지하철 같아 보인다. 지하철이 놓인 의미가 있나 싶긴 한데, 그래도 이용객은 꽤 많다.
여기서도 이르쿠츠크처럼 마스터카드 태그 결제 기능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긴 했다. 두 번 찍은 적도 있고, 같이 간 친구는 잘 되지 않아 직접 발권했다.
예전부터 러시아 지하철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는 “방공호” 목적을 겸하기 위해 굉장히 깊게 지어졌다는 것이다.(자세한 이야기는 모스크바쯤 가서 다시 하겠다) 그런데, 노보시비르스크는 그게 필요했던 시대를 훌쩍 넘겨 늦게 지어져서 그런지 아주 얕은 곳에 지어져 있었다. 또, 오비 강을 다리로 건너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 깊게 짓지 않은 듯 했다.
대신 승강장 디자인은 대략 모스크바 지하철 등의 으리으리한 디자인을 따라간 것 같긴 했다.
러시아 지하철에는 신기한 장치가 있었다. 열차 승강장 한 쪽 끝에 현재 시간과, 이전 열차 출발 후 지난 시간이 초 단위로 표시된다. 어떤 목적에서 저 타이머를 설치해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차량 위치 안내 전광판을 대체하는 아이템? 정도로 활용하면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기관사가 보고 대충 배차 간격을 조절하기 위함인가? 잘 모르겠다.
짧은 지하철을 타고 오브강 바로 앞의 역에서 내린다. 어라! 분명 지하철인데, 승강장에서 한 층 내려오니 바깥의 출구가 나왔다. 오비 강을 다리로 건너기 위한 설계인 듯 하다. 열차가 강을 건너는 다리는, 사방을 덮어 터널처럼 만들어 두었다. 애써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카뎀고로도크로 향하는 버스
그곳에 내리면 그쪽 도로에서 근교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버스들이 여러대 서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아카뎀고로도크”라고 행선지 표시를 해 둔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 요금은 적당히 타이밍을 보고 지불하면 된다. 정해진 규칙같은 것은 크게 없는 듯 했다.
버스를 탔다면, 약 30분 정도는 편안하게 쉬면 된다. 가는 길은 자동차 전용 도로 같은 느낌이라 버스가 멈추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조금 피곤했는지 조금 잤다. 잠깐씩 깨서 얼마나 왔는지 지도만 확인했다.
숲 속의 연구단지
아카뎀고로도크에 들어서고 몇몇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적당한 위치에 다다른 후 기사님께 여기서 내린다는 사인을 보낸 후 버스에서 내렸다. 눈 앞으로는 빽빽한 숲이 펼쳐졌다. 정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었다.
포항공대 앞에도 길쭉하게 뻗은 도로의 양옆으로 키 큰 나무가 자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긴 한데, 그곳에 들어설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도 어느정도 상주인원이 있는지, 꽤 규모가 되는 쇼핑몰이 있었다. 쇼핑몰에 가야하는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쇼핑몰이 있는 곳은 그나마 번화한 곳일 거고, 그 주변에 식당이 있던지, 아니면 적어도 식당가의 식당을 이용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쇼핑몰 빼고는 생각보다 주변이 휑해서 놀랐다. ㅋㅋㅋㅋ 자연 친화적인 소나무 숲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KFC로 향했다. 다른 식당도 있었는데, 간단히 먹고 나오기는 패스트푸드점이 최고인 것 같다. 그리고 늘 예상되는 그 맛을 가져다 준다.
역시… 러시아 음식들은 짜다. 햄버거까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더 짰다.
사람들이 매장에서 음식을 먹은 다음 남은 쓰레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간다.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 처럼 스스로 먹은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코너가 있긴 하지만, 손님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정리하시는 분이 따로 계신다. 어제 갤러리아 몰 식당가에서도 그런 것 같던데. 그러니까 절대 이상한 모습이 아니라, 운영 방식이 조금 다른 부분인 것 같았다.
연구 단지 이곳저곳 둘러보기
그렇게 KFC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연구소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숲속으로 이런 길이 나 있다. 이 속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좋은 휴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길은 나무가 빽빽해 마치 터널 속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만들어냈다.
이 곳에서 가장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이곳은 촉매 연구소인듯 했다. 연구소 앞에 화단이 잘 꾸며져 있었다. 손이 많이 갈텐데, 계속 가꾸고 관리하는 분이 계신 것 같다.
벽면에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사람들의 흉상이 붙어 있었다. 뭐라고 써놓은지는 잘 모르겠더라. 혹시 노벨상 수상자인가?
연구소, 연구소, 연구소, …
그 뒤로도 무수히 많은 연구소들이 펼쳐졌다. 생각나는 모든 분야에 대한 연구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고개를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여기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대충 이렇게 사는구나 싶었다.
그 외의 다른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ㅋㅋㅋㅋ
(한 마디로, 볼 건 딱히 없다는 곳이다. 본인도 특별히 보고싶은게 있어서 오기보다는, 시베리아의 과학기지라고 하는데 궁금해서 와봤다.)
이날은 햇빛이 쨍쨍해서 너무 더웠다. 덥기도 했고, 여기는 연구 단지 외의 기능을 크게 하고 있는 도시는 아닌지라 더 둘러보기도 조금 그랬다. 몇몇 전시관들이 있는 모양이긴 한데, 이날은 월요일이라 휴관하는 곳이 많아서 그곳을 가기도 조금 애매했다.
source : Wikipedia - Akademgorodok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연구소가 숲 속에 파고들어간 형태의 연구 단지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보다는 철저히 연구만을 위한 도시라는 것을 한 번 더 상기시켜주는 사진인 것 같아서 가져왔다.
노보시비르스크로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의 역순이다. 올라탄 미니버스에는 아카뎀고로도크에서 버스를 탄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내 왼쪽에 계신 분은 영어로 된 소설을 읽고 계셨고, 오른쪽에 계신 분은 휴대폰으로 논문을 읽고 계셨다(!!! 이분들도 항상 열심히 힘들게 사시는구나…)
러시아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 않은 곳, 자투리 시간에 논문을 읽는 사람이 있는 곳이 이곳이구나 싶었다.
3주 전까지만 해도 본인도 이런 곳에 있었다. ㅋㅋㅋㅋㅋ
그렇게 노보시비르스크로 다시 돌아왔다.
저 멀리서부터 도로 한복판에서 전차 여러 대가 운행을 멈추고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는데, 알고보니 한 전차가 다른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가 났던 것이다. 그 선로를 지나는 모든 전차가 멈춰섰다. 노면전차가 이런 교통사고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다.
어제 극장 옆에서 봤던 하프 석상인데, 화단 주변으로 피아노 건반이 있는 줄 처음 발견했다. 그 때 건성으로 봤나보다. 또, 이 도시에서 보내는 세 번째 날이라 그런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원래는 안전 상의 이유로 밤에는 활동을 잘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보시비르스크는 늦어가는 밤 마저 활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덩달아 늦게 나오게 된다.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 많으니 저녁 먹는 것도 늦게까지 미뤄두다 9시가 넘어서야 나왔다.
사진은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찍었다. 이제 이 오페라 극장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을 생각하니 아쉬웠다. 별 생각 없이 온 도시인데, 많은 것을 얻고 간다.
내일이면 또 다시 기차를 탄다.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기차이다. 사실, 이것이 노보시비르스크로 오게 된 진짜 이유다. 중앙아시아를 향하는 철도가 이곳 노보시비르스크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어떻게 가는지 제대로 몰랐다. 대략 “러시아 카자흐스탄 기차”라는 키워드를 한글로 영어로 쳐봐도 별로 나오는 것이 없다. 어렵게, 이곳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출발하는 기차가 있음을 확인하고 러시아 철도청을 통해 예매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이미 그 길을 다녀온, 알고 있는 입장에서 검색을 하니 훨씬 더 쉽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ㅋㅋㅋㅋ
역시, 공간적으로 가까워지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것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카뎀고로도크를 방문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카자흐스탄에 있었음), 한국 언론으로부터 다음 소식을 접했다.
에볼라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러시아의 생명공학연구소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16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근처 콜트소보시에 있는 국립 바이러스 및 생명공학 연구소 ‘벡터’의 한 실험실에서 가스통이 폭발하면서 불이 났습니다.
사고로 실험실에 있던 근로자 1명이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데, 현재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폭발로 인해 건물 유리창 일부도 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고와 관련해 콜트보트시 시장은 생화학유출 위험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보도 자료에 의하면 노보시비르스크 인근 콜쪼보 시에 위치한 벡토르 바이러스 생물공학 연구센터에서 가스 폭발로 한 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폭발 사고야 뭐… 일어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곳이 생물학 연구소라는 것이다. 과거 소련시절 생물 무기를 연구하기도 했고, 현재도 에볼라 바이러스, HIV 뿐만 아니라 연구 목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두 곳 중 하나인 매우 무시무시한 곳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이다.
거기다가 2004년도에는 연구자 한 명이 손가락을 실수로 찔러 에볼라에 걸려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러시아 당국에서는 위험 물질의 유출은 없었으며 사고 당시 진행중이던 실험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각국 언론의 반응은 “일단 한 번 러시아 당국을 의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분위기다.
이 도시에 간 것은 아니지만 대충 근처에 있다. 얼마나 가까이 갔냐면 제일 가까이 다가간 것이 반경 5km 내외일 정도다 ㅋㅋㅋㅋㅋ
(이 페이지 가장 위쪽 경로 지도를 보면 노란색 라인의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콜쪼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ㅋㅋㅋㅋㅋ)
일주일 전에 다녀간 것이기도 하고, 러시아 당국에서 문제가 없음을 밝혔지만 괜히 섬뜩해졌다.
만약 일주일만 늦게 노보시비르스크를 찾았고, 그 때 연구소 폭발 사고가 일어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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