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일차, 2019년 9월 16일

오늘의 주요 이동 경로

오늘도 약 250km 정도를 이동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의 길과 완전히 같다. 온 길을 반대로 밟아 되돌아가는 것이다. 모스크바를 가기 위해 꼭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와야 하는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것보다는 생각보다 다양한 교통 수단이 제공되고 있다. 그걸 이곳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일단,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그것이 직접 그 길을 걸어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D+22 : 키르기즈에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갈 시간

계획에 없었던 키르기즈스탄 방문을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이미 모스크바로 복귀하는 기차표를 이미 예매해 뒀고(환승), 내일 오후에 알마티에서 첫 출발편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더 있다가 꼭두새벽에 일어나 돌아와도 되기야 하지만, 5 ~ 6시간 안에 도착하리라 하는 보장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루 일찍 움직였다. 카자흐스탄에 돌아가서 전통 음식 “베쉬바르막”도 먹어 보고 싶고 말이다.

사실, 우리가 국경에서 타고 온 버스를 내버려두고 시내버스를 타고 왔기 때문에 버스 터미널이 어디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숙소 직원에게 알마티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잘 모른다고 하시면서 동료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 주셨다. 그러더니 Bishkek Western Bus terminal로 가면 된다고,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셨다.

장소를 알았으니, 이제 길을 찾으면 된다. 구 소련권에서는 어김없이 “2GIS”를 켜고 길찾기를 누르면 구글 지도 이상으로 상세한 길찾기가 제공된다. 이걸 이용해 무슨 버스를 타야할지 찾아냈다. 이번에도 걸어가기엔 좀 먼 곳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이었다.
한 두 블럭 걸어나와서 비슈케크에서 가장 붐비는 도로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비슈케크에서 가장 붐비는 도로 하면 한 블럭 차이로 동서로 놓인 두 도로라고 보면 된다. 그곳을 벗어나면 도시의 느낌은 많이 사라진다.
버스는 트롤리 버스(전차 같은 전기 버스)를 제외하면 다 미니버스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에도 미니버스를 탔다. “드바~” 하고 두 명 요금을 내겠다고 러시아어로 말하고 지불했다.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많은 거스름돈을 받은 것 같다. 대충 거슬러 주신 것 같다. “쿨내 진동(?)”이란 게 이런건가? 싶었다.

어디에서 내려야 할 지 계속 지도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기사님께서 승객들에게 뭐라뭐라 물어보시더니 버스 노선을 이탈해 지름길로 가시더라. 아마 거기 내릴 승객이 없다는 걸 파악하고 그냥 가로질러 가신 게 아닌가 싶었다. (쿨내 진동2 ㅋㅋㅋ) 버스가 이렇게 노선을 쉽게 바꿔도 되나 싶기도 하고. ㅋㅋ

비슈케크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다!


웨스턴 버스 터미널이라는 이름 답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부지는 꽤 넓고 건물은 웅장해 보이는데, 낡고 주변 정비가 부실했다.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큰 버스터미널 치고는 열악한 환경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브토바그잘~” 이라고 러시아어로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카자흐스탄 쪽을 보면 러시아어와 유사하면서도 이런 단어는 조금씩 표현이 다르던데, 여긴 아예 러시아어 표현과 동일하다. 키르기즈어가 외래어로 사용중일 수도 있겠으나, 키르기즈 사람들 또한 러시아를 더 즐겨 쓴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냥 러시아어로 표기를 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버스 표를 어디서 사야하는지 잘 몰라 2층의 큰 중앙계단으로 올라왔는데 텅 비어있는 상가가 들어서는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1층으로 가야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눈앞으로 정말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알마티 못지 않게 여기도 엄청난 설산의 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날씨는 따뜻한데, 마음만은 정말 시원해진다.
분명 시내 어디서든 저걸 봤어야 하는데, 왜 그간 눈치채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키르기즈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내 시선을 빼앗아 가서 그랬을까?

1층으로 가니 버스표를 구매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역시 국제선은 특정 창구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버스비가 비싸서 좀 당황했다. 카자흐스탄에서 타고올 때 그 가격을 예상하고 돈을 가지고 갔는데, 두 명치 버스비를 내고 나니 수중에 몇 천원을 남기고 돈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만약 모자랐다면 주변에 ATM도 없고, 엄청 불리한 환전상을 이용하는 일이 생길 뻔 했다. 다행이었다.
이번에도 별다른 일 없이 여권을 확인하고 버스 표를 살 수 있었다. 다른 창구로 가야한다고 알려주셨던 버스터미널의 친절한 아저씨께 감사했다. 계시는 내내 외국인인 우리가 신경 쓰이셨는지 잘 챙겨주셨다. 나중에 버스 타러 가야할 시간 맞춰서 타는 곳 까지 데려다주시고 말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처럼 이 민족의 따뜻한 심성에 감동을 했다. 뭔가 사람 사는 세상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분명 그랬던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지난 10년 간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혹자는 이런 단편적인 사실을 보고 무리한 판단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지역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있다. 느껴진다.

버스 출발 때 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버스 터미널 중앙 계단 아랫 부분에 조그만한 자율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사실 이 가게를 제외하고 주변에 식당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좀 배가 고프기도 하고 더 먹고싶었는데, 버스비가 생각보다 비싸서 1 키르기즈 솜 남기고 모든 돈을 다 털어서 두 접시를 가져왔다. 원래 차도 돈 주고 마시는건데, 우리 티백으로 물만 받아서 먹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했는데, 흔쾌히 허락하셨다.

천천히 먹고 잠시 쉬었다 버스터미널 청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그간 있었던 일들을 “주황색 노트”에다 조금 기록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야기도, 일정 부분은 이 노트를 참고하여 서술하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꼈기에, 적힌 내용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지만 말이다.

키르기즈에 올 계획이 없었지만, 막상 키르기즈에 오니 키르기즈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키르기즈에서 타지키스탄으로 이어진 파미르 고원을 여행해보고 싶고, 드넓은 호수와 숨막히는 설산이 어우러진 이식쿨 호수도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아까 표 구매할 때 도움을 받았던 아저씨께서 이쪽 플랫폼으로 안내해주셨다. 알마티행 버스가 출발하는 곳. 제대로 왔다.
버스에 올라타니 이미 한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키르기즈 사람인데 다음 학기에 폴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알마티에 있는 폴란드 대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영어를 우리보다 훨씬 더 잘했다. 한 살 많은 누나였는데, 지금은 중앙아시아 미국 국제 학교에서 사회적 기업가정신(??? Social Enterpreneurship 이거 뭐 어떻게 번역을 해야할지 모르겠다)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성형 수술을 많이 하는지 정말 궁금해했다! ㅋㅋㅋㅋㅋ 친구는 “그렇다! 전부 다 한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전부까지는 아니고….” 하면서 이야기했는데 친구는 “애들이랑 조금 친해지고 나면 다들 어디어디 했다고 말한다 (…) 그냥 다 했어~” 라고 말하며 내가 현실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ㅜㅜ 힝… 내가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사는 편은 맞지만 정말 어릴 적부터 봐온 친구들 중에서도 안 한 친구들도 꽤 있어서 오해 없는 표현으로 정정하고 싶었는데… ㅋㅋㅋㅋㅋ
친구와 내가 생각하는 “전부 다” 의 의미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친구는 한 80% 쯤 되어 보이고 나는 100%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하는 편이다.

좀 기다리고 있으니 한 두 승객이 더 탔다. 그 중 한명은 중앙아시아를 여행한다던 뉴질랜드 출신 의대생 형이었다. 키르기즈 누나가 영어를 더 잘했지만 모국어 클라쓰를 넘을 수는 없었다 ㅋㅋㅋㅋ Another Level!!

키르기즈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키르기즈의 이모저모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국경 지대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그랬던 것 처럼, 모두 버스에서 짐을 챙겨 내려 각자 심사를 받고 다시 버스에 타야했다. 그런데 지난 번과는 다르게 이 때 국경은 굉장히 복잡했다. 아니, 복잡함을 넘어 무질서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엄청 많이 몰려 있고,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 엄청 밀치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에 맞서 그런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는 카자흐스탄측 국경 수비대가 있었다. 이분들 사이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봤는데, 성난 군중들이 말하는 내용에 의하면 아주 오랜 시간 국경에서 대기해왔는데, 입국 심사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우리도 영향을 받느냐고 물어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카자흐스탄 측에서 이 사람들에게 까다롭게 구는 이야기에 대해 말해줬다. 과거에 반정부 시위자들과 국경 수비대와의 충돌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국경이 일시 봉쇄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이후로 카자흐스탄 측에서 키르기즈 사람들이 입국할 때 굉장히 깐깐하게 대한다고 했다.
거기에 이어 키르기즈 사회 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줬다. 키르기즈스탄에는 직업 시장이 너무 작아서 엄청 부유한 집이 아니고선 가족 중 적어도 한 명은 돈을 벌러 외국에 나간다고 한다. 누나네 집만 해도 벌써 남동생이 러시아로 나가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키르기즈로 돌아 오는 일은 드문 편이라고 한다. 그 말은,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을 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는 말이었다.

그간 우연은 아닐까? 싶었던 키르기즈의 특별한 모습들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는 다르게 독재 정권을 청산하고 민주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유의미한 성장을 이루지 못해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누나처럼 키르기즈에서 나름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는 가정에서도 해외로 일을 하러 나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다가오는 부분이다.

일자리가 없으니, 가계 수입도 낮아지며 찾아오는 소비 위축은 직업 시장을 더욱 위축시켜버리는 악순환이 일어날텐데, 키르기즈스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이 차량이 러시아 국적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차량이 키르기즈까지 통행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는 아직까지 유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말을 탄 채로 가축 떼를 몰고 가는 목동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다시 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의 드넓은 초원을 달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엄청난 가축 떼들이 우르르 지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말을 탄 목동이 이 가축 떼를 몰고 있었다. 진짜 유목민을 만났다.
아직까지 유목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도로가 포장이 안 된 것처럼 보이는데 알마티와 비쉬케크 사이의 도로는 대부분 포장되어 있다. 이쪽 길은 도로 보수를 위해 부설한 임시 도로였다. 아마, 오프로드 주행에 대한 고통(?)은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알마티에 도착하다!


초행길이 아니어서 그런지, 지난 번에 비해 훨씬 더 빨리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온 형이 택시를 쉐어하지 않겠니? 물어봐서 이야기를 하다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나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 있어서 간단한 메세지를 보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바르샤바에서 기회가 되면 만나자고 했지만, (스포) 바르샤바에 있을 때 연락을 하진 못했다.


분명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데, 퇴근 시간대라서 그런지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그리드형 도로망이 교통 분산에 좋다는 말을 했는데, 그거 정말 취소하고 싶다. 이 사진을 보라! 교차로까지 꽉 막혀있고 우측 도로에 길게 늘어서 있는 차를 보라…
180만이나 사는 도시에, 출퇴근 시간에 교통 체증이 나타나지 않는 게 이상한거지 음음!

문제는 차가 막히는 것이 아니다. 독한 매연을 그만큼 오래 마시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탄 택시가 아우디인데, 아우디도 아우디 나름이라고, 30년된 것 같은 기름냄새 새카만 매연 폴폴 풍기는 그런 아우디였다 ㅋㅋㅋ
오래된 택시도 문제였지만, 길거리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차가 이렇기에 도로 주변의 공기 질은 내가 경험한 것의 최악을 자랑했다.
뭔가 뒤쪽으로 보이는 청명한 설산을 보면 전혀 그렇지 말아야 하는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뉴질랜드 형이 묵는 호스텔까지 데려다 줬다. 형도 우리를 배려해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냥 우리가 양보했다. 그래서 형이 요금을 살짝 더 많이 낸 것 같았다. 우리가 가려던 식당도 그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알마티 지도에 속았다! 다섯 블록만 지나가면 되네~ 하고 봤더니 2km 를 걸어가야 했다 ㅋㅋㅋㅋㅋ
20kg 되는 짐과 함께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건 영 좋은 일은 아니다.

베쉬바르막을 맛보다!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카자흐스탄의 전통 음식 베쉬바르막을 맛보러 왔다.
베쉬바르막은 카자흐스탄 말로 “다섯 손가락” 이라는 뜻인데, 과거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서 이 음식을 먹었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근데 식기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다 손으로 먹지 않았나…? 다큐 같은데 보면 유목 민족들은 지금도 음식을 손으로 먹는 모습도 많이 보이던데…)

보통 말고기(!!!)나 양고기로 만든다고 한다. 양고기는 그렇다 쳐도 말고기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기 힘든 육류이지 않은가! 뭔가 느낌이 어떨지 기대되었다.
식당 상호가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검색을 통해 찾은 “키시락”(맞나?)에 방문했다.

꽤 먼 거리를 걸어왔기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배낭을 풀어두니 극도의 편안함이 몰려왔다. ㅎㅎ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로 맥주를 주문했다.
저기 뒤쪽에 보면 샹들리에도 있고 인테리어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름 이 지역의 고급 식당 중 하나였다.
음식으로는 베쉬바르막과 양고기 케밥을 주문했다.


왼쪽 아래는 양고기 케밥이고, 오른쪽 위에 있는 것이 베쉬바르막이다. 육수에 푹 쪄낸 말고기와 얇게 펴 만든 피, 그리고 삶은 감자를 함께 내주었다.
나는 전병과 비슷한 음식류를 좋아해서 그런지, 베쉬바르막의 밀가루 피에다 부드러운 고기를 싸 먹는 요리가 참 맛있었다. 피에 육수도 잘 배어들어서 풍미도 아주 좋다. 말고기도 상당히 맛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만약 다음에 카자흐스탄에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꼭 베쉬바르막을 먹으러 갈 것 같다. ㅎㅎ

이란계 터키인 아르말리 아저씨 집으로


사실 오늘은 묵을 숙소를 잡아 두지 않았다. 지난번에 아저씨를 만났을 때 묵을 곳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연락을 드려서 신세를 좀 지기로 했다. 밥을 먹은 후에 아저씨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 집으로 향하던 중에 어떤 넓은 공원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이런 신기한 건물들도 있었다.

아저씨 집 근처에 도착해 연락을 드리니, 1층 현관까지 마중나와 반겨주셨다. 그리고 거실 한 쪽의 테이블에는 실 같이 길쭉한 치즈, 맥주, 와인을 차려두고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해주셨다. 정말 얹혀서 하룻 밤 묵게 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한데, 이렇게 환영까지 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 같이 서로의 나라 혹은 주변 지역에 대해 궁금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있었던 경험들을 나누곤 했다. 한중일 관계에 대해 물어보셔서 아마 “킹시국”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ㅋㅋㅋ 아저씨께서 한국 음악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하셔서 배경음악으로 틀어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인데, 경험과 연륜이 쌓이신 분들이 새로운 지역의 사람을 만나거나 여행할 때 음악에 대해 많이 물어보는 경향이 있었다. 음악은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잘 요약하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구매하게 되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농심 컵라면을 하나 가지고 계셨다. 김치 이야기를 하니, 김치 같아 보이는 거 가지고 있다며 “김치우동” 컵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었다! ㅋㅋㅋ

그렇게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2시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오후 세 시쯤 기차를 타야하니, 12시쯤 역으로 출발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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