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일차, 2019년 9월 24일
D+30: 제정 러시아의 여름궁, 페테르고프(D+30)
레닌그라드에는 멋진 분수가 있는 정원이 있다.
“레닌그라드에는 멋진 분수가 있는 정원이 있다”
예전부터 아빠께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멋진 분수가 많은 정원이 있는데 굉장히 멋질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사실, 지금까지 이 정원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찾아본 적은 없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빠께서 늘 말씀하신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페테르고프"라는 궁중 정원이었다. 과연 아빠께서 여러 번 말씀하실 만큼 굉장히 멋지게 꾸며져 있어서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지만, 어쩌면 아빠와의 소중한 기억이 깃들어있는 소중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페테르고프"는 제정 러시아 때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그 주변으로 아름다운 분수와 정원이 꾸며져 있다. 특히, 궁전 바로 앞으로 펼쳐진 공원 중앙의 분수들이 숨이 막힌 광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정원은 핀란드 만을 마주하고 있어 인공적인 궁중 정원 속에서 탁 트인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페테르고프로 가는 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핀란드 만을 손으로 감싸 쥐는 듯 한 모습을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는데, 페테르고프는 핀란드만 아랫쪽의 저쪽 끝편 쯤에 위치해 있다. 여기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내와 가까운 곳에 머물게 될텐데, 여기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대략 1시간 반 ~ 2시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좀 특별한 방법도 있는데, 시내와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고 페테르고프에 도착하는 페리 편이 있다. 물론 가격이 비싸겠지만, 바닷바람도 맞고 페테르를 바다에서 조망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경험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페테르에는 지반이 약한건지, 개발 제한이 걸려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건물들이 5층 내외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고 지대가 굉장히 낮아 스카이라인이 영 별로다. 은근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전망이 기대 이하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페테르에서는 도시가 주는 분위기와 건축물들, 운하 등을 더 관심있게 보는 편이 훨씬 더 흥미로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당연하게도, 가난한(?) 배낭여행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대중교통을 향해 페테르고프로 향했다. 역시나, 구 소련권에서 최강인 “2GIS"지도를 이용해 길을 찾았다. 도보, 지하철, 버스 순으로 갈아타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페테르고프가 페테르의 외곽 지역에 있어서 어느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마르쉬투르카)를 타고 가야한다. 페테르에는 전차 노선이 굉장히 촘촘하게 깔려 있지만 페테르고프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우리나라를 출발한 이후로 한 달 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오면서 “날씨가 정말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나 이쪽 동유럽 지역은 가을, 겨울에 일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는 먹구름 가득한 날씨가 펼쳐지는데, 이렇게 햇살 가득한 맑은 날씨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그간 날씨가 좋지 않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긴 여행을 하는 만큼 매 순간 새로운 기회가 나를 찾아 온다.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으로, 감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 역까지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어서 집을 나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원래는 강 하구에 펼쳐진 넓은 삼각주와 뻘판이었다. 이 위에다 도시를 짓기 위해 아주 많은 돌을 쏟아 부어 뻘을 메웠고, 이 과정에서 중노동을 이기지 못해 죽은 노동자들까지 같이 묻어버려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원래 (그냥 갖다 붙이면 그만인)별칭을 사용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이것 만큼은 나름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상대적으로 문화적 열세를 느끼던 제정 러시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가져다 준 천도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볼 수 있다.
아, 그래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게 건설한 도시기에, 도시 전반이 해발고도가 매우 낮은 평지에 펼쳐져 있으며 운하 또한 많다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넓고 좁은 운하를 많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페테르고프 궁의 윗 정원
오늘도 어김없이 지도를 보며 내릴 지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이 마을 주민 만큼 이곳으로 놀러온 관광객도 많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외지인이 버스를 탔다면 아마 기사님이나 주변 승객들이 안 내리냐고 사인을 보내주실테니 ㅎㅎ
잔잔한 연못 위에 분수가 설치된 석상에서 물이 졸졸졸 흘러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니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딱 “서양식 정원” 하면 떠오르는 그 모습이 펼쳐졌다. 보통 그 예시로 “베르사유 궁"을 많이 소개하는데, 실제로 이곳은 제정 러시아의 표토르 대제가 프랑스를 방문해 베르사유 궁을 보고 난 후 이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정원을 가진 궁을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일화가 있다1. 요즘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홍보 단체에서는 “러시아의 베르사유 궁” 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2.
아랫 정원과 큰 폭포
페테르고프의 진정한 면모를 보려면 아랫정원 부분을 보아야 한다. 아랫 정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원한다면 돈을 좀 더 내고 궁전까지 들어가 보는 표를 살 수도 있는데, 정원만 해도 비싸기도 하고(2019년 기준 대략 18000원) 크게 인상적이지 않을 것 같아 일반 입장권을 끊었다.
매표소 안내 표지판에는 ISIC(국제 학생증 카드)를 사용한 할인이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물어 보니 대충 러시아 학생에 한해서만 할인이 된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전체 가격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다.
The Grand Cascade and Samson Fountain
비싼 아이스크림
중앙 분수 계단에서 흘러나온 물은 곧게 뻗은 수로를 통해 바로 앞의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양쪽으로 늘어선 숲 사이로 뻥 뚫린 바다가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두 달 만에 만나는 바다
핀란드 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스카이라인
숲 속을 걸어요
그런 숲 속을 걷다 보면 나무 사이 사이로 아까 보았던 맑고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저 멀리 낮게 펼쳐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이 진한 색을 내어 마치 저 멀리 있는 깊은 바다를 바라보는 듯 한 착각을 가져다 준다.
또 다른 곳에 펼쳐진 새로운 정원
페테르고프는 정말 크다. 베르사유를 가보지 않아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충분히 이곳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한 나절을 모두 투자해야 함이 틀림 없다.
표지판을 보고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또 반대방향으로 곧게 뻗은 길을 조금씩 걸어나가다 보니 새롭게 펼쳐진 정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니 또…?
이제는 돌아갈 시간
돌아 나가는 길에도 볼 거리가 굉장히 많았다. 중앙 계단 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높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폭포들도 몇몇 있어 구경했다.
이렇게 석조 구조물을 베이스로 설치된 폭포들도 있다. 참신한 시도인 것 같다.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의 역순
핸드레일이 더 빠른 러시아의 에스컬레이터(…)
모스크바 지하철을 탈 때도 느꼈는데, 에스컬레이터 계단의 속도보다 핸드레일의 속도가 미묘하게 빨라서 계속 놓지 않고 잡고 있으면 손이 저만치 앞으로 뻗어나가 있다. 무엇을 위한 설계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돌아가는 길은 오는 길의 역순이지만, 실수로 지하철에서 한 정거장 일찍 내려버렸다.
오늘 하루종일 걸었던 것도 있어 숙소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는 트램을 타고 돌아가는 쪽으로 결정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 만큼 지하철 노선이 촘촘하지는 않은데, 대신 트램이 아주 촘촘히 잘 깔려 있어 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시베리아 지역과 같이 승차하면 승무원 분께서 요금을 받으러 오신다. 카드를 태그해 결제하거나 현금을 내면 영수증 또는 종이 표를 확인용으로 주신다. 요금은 30루블 정도로 우리나라에 비하면 많이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