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일차, 2019년 9월 28일
오늘의 주요 이동 경로
오늘은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로 이동한다. 이곳 북유럽 국가는 여기저기 깊숙히 파고든 바다 때문에 자유로운 육상 이동이 힘들어서인지 굉장히 많은 페리 편이 운행되고 있다. 이탈리아와 발칸반도(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사이의 아드리아해도 비슷한 장애물로 기능해 이곳에서 운행되는 정기 페리도 상당히 많다. 한 술 더 뜨면 카스피해 사이를 오가는 배편도 있다! 이런 지형 조건에서는 해상 교통수단이 마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꽤 높은 것이다!
이런 지리적 정보를 통해 그 지역에 있을 법 한 교통편을 예상하는 것도 색다른 여행을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D+34: 에스토니아로 향하는 페리(D+34)
계획을 바꿔 에스토니아로
원래는 이곳 헬싱키에서 핀란드 북쪽을 따라 올라가 북극권을 체험(?)하고 스웨덴쪽으로 건너가 다시 내려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항상 일을 하면서 “진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극한을 모두 경험하는 익스트림형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은 보통 사람들에게 잘 들어 맞지 않는 행동 양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유, 목적, 투자 대비 얻는 것, 과시(순화 해서 자랑?), 개인의 만족도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이런 일정은 위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아 물론, 나의 경우 개인의 만족도가 매우 커서 다른 것에서 잃거나 얻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이를 상쇄시키기 충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의 만족 말고는 잘 신경쓰지 않는다.
에스토니아로 가는 페리
에스토니아와 핀란드를 오가는 페리는 여러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두 노선이 “실야 라인”과 “바이킹 라인”이 있다. 바이킹 라인이 이 업계에서 후발 주자여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두 회사 모두 에스토니아 행 뿐만 아니라 스웨덴, 덴마크 등지로 가는 페리 편도 운행하니 이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들 국가 사이를 이동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것 같다.
처음에는 저 북쪽 끝에 스웨덴과 맞닿아 있는 국경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핀란드에서만 기차 값으로 20만원 가까이 지출할 수도 있지만, 페리편은 (이틀 전에 예매해도)5만원이다. 매력적인 교통수단 아닌가?
바이킹 라인 선착장으로
우연하게도 바이킹 라인 선착장은 우리 숙소인 유로 호스텔 바로 앞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아침 출발이라 할지라도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30분 이상의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하루 전체를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다.
호스텔 정문을 나서서 앞으로 5분간 걸어가니 선착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어제 잠시 구경왔을 때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하더니 배 시간을 페리 출발 시간이 다가오니 터미널로 향하는 사람이 많아서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입구에 들어가니 로비가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마치 행사장에 온 것만 같았다. 카운터로 가서 온라인 예약증을 티켓으로 교환받았다.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모드 쉥겐 조약 가입국이라 출입국 심사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약 정보와 일치하는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여권을 요구하였다.
사실 이렇게 셀프 체크인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티켓을 모두 받고 나서야 이걸 발견했다.
로비의 윗층은 출발층이었다. 위쪽의 표에 인쇄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입장할 수 있다.
표지판에는 다양한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핀란드에 워낙 짧게 머물렀던 터라 영어 빼고는 무엇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표를 스캔하고 입장하니 탑승 대기중인 인원이 어마어마했다. 그 중에서는 와인 같은 음료를 함께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승객들도 꽤 있었다. 두 달쯤 후에 본 것이지만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때도 사람들이 공연 시작 전 홀에서 와인 같은 음료를 즐기며 멋을 한껏 내고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 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에게 “페리”란 약간 호화로운 것이란 이미지로 남아 있어 그런 인상을 더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놈의 입구는 언제 열리는지 모르겠다. 무거운 짐을 빨리 내려놓고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빨리 들어가서 갑판에 나가 바다를 구경해 보고 싶다.
승선 시작
입구가 열리고, 탑승을 시작하자 마자 엄청난 사람들이 입구로 몰려 갔다. 비교적 입구에 가까이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나 많은 사람이 이미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배가 컸으면 아주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배에 오를 수 있을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도 기다란 통로를 따라 쭈욱 걸어간다. 저쪽에 배로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가 보인다.
입구는 무려 7층에 위치해 있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흔히 생각하고 있던 페리선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호텔 같은 럭셔리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층별 안내도이다. 탑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4 ~ 10층인 모양이다.
페리에 일찍 탑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늦게 탄다면 바다를 바라보며 갈 수 있는 창가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 돌아다녀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배가 워낙 커서 어딘가에는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거라 믿는다.
조그만한 배를 타면 배의 엔진이 털털거리는 소음과 진동 덕분에 배가 움직이는지 그렇지 않은지 파악할 수 있는데 페리는 바깥을 바라보지 않으면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배는 어느 순간 방향을 틀어 바다를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신 이쯤에 있는 빈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아침을 미처 먹지 못해 배 안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가격은 역시 비싸지만, 북유럽의 페리 안임을 감안하면 또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쪽 지역은 물가가 비싸더라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비쌈(?) 같은 분위기를 주었다.
거대한 페리 이곳 저곳
아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
우연히 우리가 자리잡은 층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식당에 설치된 평범한 놀이터 처럼 생겼다.
이렇게 보물 찾기를 할 수 있도록 표지를 설치해 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미션 수행지와 색연필을 가지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놀 수 있었다.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북유럽은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나 싶었다.
애증의 와이파이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지만 로그인 창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이용할 수 없었다 ㅠㅠ 바다 한 가운데서는 아무런 전파도 잡히지 않기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중성 화장실
역시, 이런 사회적 문제 접근에 있어 앞서 있는 북유럽 답게, 중성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었다.
측면 갑판
페리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페리에서 바라보는 바다였다. 갑판으로 올라갔다. 수평선이 보이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배가 커서 그런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데 바람이 굉장히 강했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선미 갑판
이곳은 내가 페리에서 가장 사랑한 장소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따사로운 햇살을 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같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곳 유럽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하늘은 우중충해지고 가랑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날씨가 많이 반복된다. 그래서인지 이런 햇살이 더 반가워지는 것 같았다.
어떤 깃발이 이렇게 휘날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에스토니아 국기겠구나 싶었고 실제로 그랬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산다 싶을 정도로 이곳 저곳의 지리 정보를 관심 있게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이쪽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는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라들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위치나 문화, 역사 같은 건 하나도 알지 못했다. 스웨덴으로 갈 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롭게 마주하는 이 곳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설치된 벤치들도 허리를 뒤로 눕혀 편히 쉴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는 것 처럼 나도 똑같이 이곳의 분위기를 즐기며 편히 쉬었다.
이런 장소를 이렇게나 늦게(?) 발견한 것이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었다.
5만원 정도에 이렇게 진귀한 경험을 얻게 되다니… 참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측면 갑판에서 선수를 향해 걸어갈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약간 선수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엄청난 폭풍에 맞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듯한 극한의 상황이 펼쳐지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람이 강력했다. 정말로. 내가 경험한 그 어떤 바람보다도 셌다. 그래서 그런지 갑판의 선수 부분으로는 갈 수 없도록 저렇게 펜스를 쳐 두었나보다.
막다른 부분에서 이렇게 다시 선실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왜 이런 유리 창문을 설치해 두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여기 안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작은 카지노
갑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돌아보고 나서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한 켠에는 슬롯머신 등이 설치되어 있는 카지노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거 해도 되나? 궁금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면세점, 식당 등 다양한 부대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핀란드는 주세가 굉장히 높은 편인데, 이것 때문에 에스토니아로 가서 술을 잔뜩 사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략 5만원 정도, 두 세시간 거리의 에스토니아이니 주민들이 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하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국경이 열린 세계는 이런 생활을 영유할 수 있구나 싶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거나 자유로운 남북 교류가 되어도 흠…? 북, 중, 러? 이런 분위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ㅎㅎ
살미아키
핀란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독특한 캔디류 중 하나다. 뭔가 모를 퀴퀴한 냄새와 박하 같은 알싸한 향, 매운 맛이 동시에 나는 검은 맛인데, 누군가는 이를 폐 타이어 씹는 맛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그걸 씹어봤나? ㅋㅋㅋ) 그런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맛이다. 핀란드 사람들 중 이런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입맛이 그렇게 까다롭지 않아서 별 이상은 못 느꼈지만 찾아서 먹을 정도로 매력적인 맛은 아니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핀란드산 고퀄리티 자일리톨이나 많이 먹을거다 ㅎㅎ
곧 만날 에스토니아
두 시간 좀 더 넘게 달렸을까. 드디어 저 멀리서 에스토니아의 영토가 보이기 시작한다. 옛 건물의 첨탑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다.
탈린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는 내려야 할 시간이다. 여러모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한 덕분에 이렇게 빨리 내리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엄청난 인파 속에 떠밀려 내리듯 내리느라 조금 정신이 없었다. 내리는 중에 본건데, 여객 수송 뿐만 아닌 카페리 서비스도 운행하는 것 같았다. 승용차 뿐만 아니라 큰 트럭같은 화물차도 여러 대 실려 있었다. 무거운 화물차가 페리에서 나오니 그 큰 페리가 이제서야 위아래로 조금 흔들렸다.
탈린 국제 여객 터미널
오전 10시 쯤 출발하는 배편을 타고 왔기에 숙소 체크인 시간인 3시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이곳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며 쉬다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페리에서 내린 그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터미널을 빠져나가 여객터미널 청사는 텅텅 비게 되었다.
핀란드 다운 깔끔하고 유려한 디자인보다 평범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허나, 이런 디자인도 어수선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본인은 조금 더 단순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듯 하다.
앞으로 마주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경우 선불 SIM 카드를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대략 3~4유로 정도 한다. 옵션에 따라 다르지만, 저정도면 일주일 데이터 무제한 등의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편의점에서 교통카드 구매와 충전도 가능하다. Kiosk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깥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처음 마주하는 에스토니아
처음 마주한 에스토니아는 따뜻한 햇살이 감도는 평원이었다. 깨끗하고, 고요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인상을 깊게 남겼다. 이 느낌이 첫 순간인 지금부터 에스토니아를 떠날 때 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이 사진을 골랐다. 에스토니아의 멋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석판으로 포장된 길을 지나서 갔다. 옛 느낌이 물씬 나는 거리이지만, 생각보다 옛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길을 걷다 보면 차도를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불쑥 솟아오른 부분이 있는데, 과거 아스팔트 도로의 과속 방지턱 부분을 덮은 것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조금 있다. ㅎㅎ
그리고 그 생각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들어선 기념품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혹시 옛 거리 느낌을 살려서 인상적인 관광지로 만드려는 노력이 있진 않았을까?
그런데 저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의 것 아닌가? 무조건 기념품을 판매해 수익을 내려는 것 보다 에스토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를 더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념품점에 들어가 볼 일이 있었는데, 상점 주인은 에스토니아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인 마냥 설명을 해줬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 같았다.
평화로운 에스토니아의 모습이다. 숙소를 향해 2km 정도 걸어가는 길은 항상 이와 같았다.
숙소에 도착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인데, 이 집은 주인이 사는 집인데 고객이 있으면 잠시 방을 비우고 빌려주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나지막한 주택과 그 사이로 빼꼼 올라온 나무들이 가을의 분위기를 잘 내주고 있었다.
오늘 이동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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