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2019년 8월 28일
D+3 : 걸어서 둘러보는 블라디보스토크
2019년 8월 28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새로운 잠자리에서 처음 잘 때 정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별다른 생각, 노력 없이도 원래 계획보다 한 두 시간 일찍 깨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근데 어제 공항에서 잠을 자듯 못 자듯 하고 낮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그 현상이 더 심해졌다. 충분히 많이 잔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면 한 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 다시 잠들었을 때는 다행히도 7시 조금 넘어서까지 잤다. 창 밖으로 햇살이 들어왔고, 그 김에 바로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어제 마트에서 사온 도시락 라면이다.
숙소를 찾기 어려웠던 기억도 있고 여러모로 시설이 열악했는데, 이르쿠츠크에 하루 묵을 숙소를 예약하다가 근처에 비슷한 가격대의 괜찮은 방이 있어서 예약 요청을 했고, 바로 승인이 떨어져 그 곳으로 향했다. 에어비엔비를 처음 시작하신 분인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도와주려고 하셨다. 마침 숙소에서 세탁기도 무료로 쓸 수 있어 아침을 먹으러 가기 전에 빨래를 돌려두고 나갔다.
러시아에서도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좋다. 한국 세탁기라고 광고하고 있다. ㅋㅋㅋ
오늘의 점심 식사?
“~~~ 지역 맛집”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우리나라 블로거들이 쓴 글이 정말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곳을 찾아가보면 온통 한국인 뿐이었다. 그리고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한국인 여행객이 매우 많은 일본 간사이 지방을 여행할 때 특히 그랬다. 내 추측으로는 “내가 가 본 집이 맛집” 이 되는게 아닌가 싶다. 블라디보스토크도 한자 문화권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다 보니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피해가고 싶다. 그래서 블로그 대신 구글 리뷰를 참고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쓴 리뷰를 함께 따져볼 수 있으니 위험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다 가까이 있고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선택했다. 어라…? 식당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어제 머물렀던 숙소의 이름과 같았다. ㅋㅋㅋㅋㅋ
인테리어도 잘 되어 있어 분위기가 사는 식당이었다. 해산물 오믈렛, 해산물 크림 스튜, 흑빵을 사용한 버거를 주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 -> 바다"라는 연결고리가 끊임없이 남아 있어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 위주로 시켰다.
식당과 숙소 이름이 “호흘로마"였는데, “호흘로마 만족도 총량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숙소에서 아쉬웠던 만큼 식당에서 만족을 얻고 가는 것 같았다.
커피가 조금 롯X리아 2000원 아메리카노 급으로 묽었던 것을 제외하면 모두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차례차례 둘러보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관광지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에서도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흔적이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랑 체급이 비슷한 러시아의 다른 도시보다도 관리가 참 잘 되어 있다.
레닌 동상, 혁명광장, 전쟁 기념 광장
숙소로 다시 돌아가 빨래를 널어두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쪽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둘러볼만한 장소 대부분은 이 주변에서 쉽게 갈 수 있다. 주변에 Arbat 거리, 혁명광장, 영원의 불꽃 등이 있다. 독수리 전망대도 걸어서 갈 수는 있는데(그리고 그렇게 했다) 조금 멀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러시아 어딜 가나 있는 레닌 동상을 보았다. 어제 빗속에 정신 없을 때 잠깐 보긴 했지만. 해가 뜨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는 레닌 동상이 풍기는 다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혁명광장으로 향했다. 근데 이곳을 지칭하는 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대략 영어로는 Central Square, Revolution Plaza가 통하는 것 같다. 레닌 동상이 있는 곳에서 5~10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가는 길에 한국인 “만” 줄을 길게 서 있는 식당 한 곳을 봤다. 블라디보스토크 또한 한국 커뮤니티 사이에서 “내가 다녀온 곳이 관광 명소/맛집”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광장에 도착했다. 큰 동상이 있는데, 정확히 무엇을 위해 건설되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믿지 못할 소스에 의하면 적백내전 당시 레닌의 편에 서서 싸우느라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함이라는데…
혹시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광장 한 귀퉁이에 있는 벽면에는 글자를 여러 번 겹쳐 써 그린 호랑이 그래피티가 있었다. 발상이 독특했다.
국기 계양대에 끝에 달린 장식 왜 새 모양인가? 싶어서 보니 모든 봉에 새가 한 마리씩 올라가 있었다. ㅋㅋㅋㅋㅋ 난 또 뭐라고… 그만큼 광장에 비둘기가 많다. 우리나라도 10년 전만 해도 역전에 가면 광장에 바글바글한 비둘기를 볼 수 있었는데, 광장 리모델링을 한답시고 공사를 한 번 쭉 하고 나더니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비둘기 친화적인 나라였다(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그랬거든. 보자.. 우리나라가 비둘기에게 불친절하다고 설명하는게 낫겠다.).
광장에서 동쪽으로 3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비가 많이 와도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과, 잠수함 한 척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뒤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금각교"라고 많이 알려진 잘라또이 모스트가 보인다. 멀리서 봐서 그렇지, 이 다리는 엄청 큰 다리이다. 큰 컨테이너선이 밑으로 오갈 수 있도록 정말 높은 곳에 지어져 있다. 글을 쓰는 시점(20년 1월)에 Wikipedia를 참고한 결과 세계에서 17번째로 경간이 넓은 사장교라고 한다(737m, 인천대교는 800m로 13위). 이 다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큰 사장교는 아닌데, 근처에 루스키 섬을 잇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사장교 루스키 대교가 있다. 이 다리의 존재로 인해, 한국 커뮤니티 내에서 종종 잘라또이 모스트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장교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독수리 전망대
구경하는 중간중간에 비가 오락가락 했다. 이번엔 빗방울이 조금 굵어서 어떤 건물 처마 밑에서 잠시 기다렸다. 3분 정도 기다리니 비가 좀 잦아들더니 그쳤다. 그 틈을 타, 구글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독수리 전망대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찍은 굼 백화점이다. 모스크바에도 있는 굼 백화점이 여기에도 있었다. 안 들어가봐서 여기서도 굼 백화점 아이스크림을 파는지는 모르겠다. ㅎㅎ
오른쪽 사진은 가는 길에서 마주한 이름 모를 동상이다. 러시아에는 여러 종류의 동상이 많아서 하나하나 다 챙겨 보기가 어렵다. 친구가 동상을 언덕에 설치해두는 이유는 힘겹게 올라와 동상을 마주한 후 느끼는 경외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라 그랬다. 말이 되는 가설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지형은 딱 부산이랑 비슷하다. 급경사의 오르막이 도처에 펼쳐진다. 시내에서 독수리 전망대로 가는 길도 그렇다. 게다가 도로에 인도가 없어 갓길로 걸어가야 하는 구간도 조금 있어서 가능하면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는 편이 좋아보인다. 아까 동상 이야기 한 것 처럼, 걸어 올라갔을 때 전망대가 더 탁 트인 느낌이 들고 멋져 보이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 걸어 가는 것도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아,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 다리를 배경으로 절벽에 걸터 앉아 사진을 많이 찍었던데, 직접 가보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장소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담장을 넘어 가야한다), 아래쪽에 별다른 안전 장치가 없어 꽤 위험해 보였다. 꼭 그곳에 가지 않아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항구 도시다. 도시 바깥쪽과 금각만 깊숙한 곳에 항만 시설이 만들어져 있었다. 극동 지방에서 가장 남쪽 지역에 있고, 화물 철도와 연계가 가능해서 그런지 꽤 활발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독수리 전망대에는 키릴 문자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형제 동상이 있는데, 지금은 그냥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단다.
또 다시 찾아온 강한 소나기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금방 맑아진 야속한 날씨
놓치고 싶지 않은 하루하루, 내가 놓쳤던 것들.
그렇게 오늘 하루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마지막 날도 마무리했다. 오늘 저녁에는 어제 미뤄두었던 기록과 함께 오늘의 내 생각을 기록했다. 다른 세계에서 얻은 많은 새로움을 하나도 놓치기 싫었는지 정말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이 몇 페이지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고도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기록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여행에서의 하루 하루를 놓치지 않으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일상에서의 하루 하루는 이만큼 절실하게 지켜내려 하지 못했다는 것을..
내일 오후에 이르쿠츠크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탄다. 처음 이동하는 것이고, 시간과 체력을 생각해서 내일은 기차 탈 준비를 잘 하는데만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