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일차, 2019년 9월 30일

오늘의 주요 이동 경로

오늘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떠나 에스토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페르누로 향한다. 에스토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인구는 10만을 넘지 않는다. 그만큼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다.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친구와 다른 길을 찾아 떠나게 된다. 고등학교 때 여행을 좋아하시는 선생님께서 여행을 같이 가서 각자 돌아오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나 또한 그 대상자가 되어버렸다 ㅋㅋㅋ 그렇지만, 안 좋은 일을 겪고 나서 각자 갈 길을 간 것도 아니고, 출발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부분이기도 해 큰 부담은 아니긴 했지만, 또 그렇다고 신경이 안 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에는 생각보다 “야망”이 크고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좋게 보면 가슴 뛰는 이야기가 항상 흐르는 것이고, 조금 삐딱하게 보면 자존심이 지나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당연하게도, 나 포함이다). 아프리카 남단까지 함께 써 내려 가는 이야기도 좋지만, 각자의 생각과 마음이 녹아있는 이야기를 하니씩 써 내려 가는 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예전부터 늘 말하던 것이지만, 요즘 시대에 “세계 여행”이라는 것 그 자체는 그다지 큰 모험거리가 아니다. 그리 멋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여행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행에 특별함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 속에 있는 나의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나의 특별한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바닷가 도시 페르누(D+36)

에스토니아의 교통편

지금까지의 이동에서 기차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이곳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버스가 훨씬 더 보편적이다. 열차도 운행하지만 노선이 제한적이고 버스에 비해 느린 편이며 가격까지 비싸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에 있는 도시들이 다들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버스 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교통카드에 남은 금액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Tallinn Bussijaam 이라 쓰인 간판이 있다. 사실 이곳은 뒷문이다. 앞문에는 좀 더 깔끔하고 큰 간판이 있는 것 같던데, 난 뒷문으로만 오가서 잘 모른다. ㅋㅋㅋㅋ


터미널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핀란드에서도 이런 걸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연어와 사워 크림 같은 소스를 곁들인 요리가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관광지인 올드타운 근처에서 먹었으면 이런 것도 만 원 넘게 나올 것 같은데 터미널에 딸린 카페라서 4 유로(5천원) 정도에 허기진 배를 조금 채울 수 있었다.

혼자 다니면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분명 있다. 불편한 점이 벌써부터 나왔다. 화장실을 갈 때, 보통은 서로 짐을 맡아 두고 있다가 교대로 다녀오거나 그랬는데, 그것이 불가능해 진 것이었다. 매 번 메고 있는 여행 가방의 허리 끈을 풀고, 앞으로 메고 있던 작은 배낭을 한 쪽 어깨에 걸쳐둬야 했다(요놈이 가만히 있으면 별로 문제가 없는데, 계속 미끄러져내려 각별히 신경써야했다 ㅋㅋ). 여행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앞으로의 며칠동안은 색다른 일에 많이 마주할 것이다. 이런 것 처럼. 그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런 버스는 처음이야!


인터넷에서 교통편을 조사하다 보니 “룩스 익스프레스”의 버스가 전반적으로 평가가 나은 편이라 나도 이 버스회사를 알아봤다. 러시아와 비슷하게, 구글 맵이 모든 교통편 정보를 제공해주진 않는데, 에스토니아 버스는 이 앱 혹은 웹사이트를 통해 알아보면 좋다.

Tpilet(링크)

가격 옵션을 보면, 어린이와 노약자 등의 교통약자는 거의 절반의 가격에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해주고, 나와 같이 26세 미만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할인(10%) 정책도 있어 굉장히 놀라웠다.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들여 오면 좋을 것 같았다.

아무튼, 버스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무려 버스가 3축이다! 뒷 바퀴가 두 개나 달려있는 아주 긴 버스다. 게다가 버스 안에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도대체 버스 안에 어떻게 화장실을 설치해 둔 건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서 타던 버스를 생각하면 어디에 설치되어 있을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짐을 실을 때 기사 아저씨께서 “빼르누~?”라고 물어보셨는데, 난 순간 “뭐지” 싶었다가 외국인이니 다시 한 번 행선지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물어보셨음을 깨달았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Pärnu를 “파르누”라고 읽는 것이라 착각을 했다. 윗쪽에 붙은 움라우트를 통해 뭔가 다른 발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지 사람으로부터 정확한 발음을 듣고 이용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아마, 이것보다 더 좋은 시설을 갖춘 우등 버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세시간 가면 되는 일정이다 보니까 자리의 편안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좌석 간격도 꽤나 넓은 편이다. 모든 버스 자리에 승객을 위해 구토봉지를 마련해 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버스를 거의 안 타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오…. 이건 거의 10년 전 쯤 나온 안드로이드 2.1, 2.2 버전에서 볼 법한 부트애니메이션인데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이렇게 지도 메뉴를 클릭하면 도착까지 남은 거리, 버스의 현재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에스토니아는 도시를 제외하면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평원이 나와서 그런지 도로 중간중간 인터넷이 끊어지는 구간이 많았다(그래도 러시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ㅋㅋㅋㅋㅋ). 그 때는 지도를 통해 버스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여기는 꾸준히 업데이트 되어서 나름 쓸만했다.
(아니 근데 누가 대체 이런 걸 수시로 확인할까!)

이외에도 음악, 영화, 라디오 등 다양한 미디어들이 제공된다. 음악이야 뭐 휴대폰에 있는 음악도 충분히 많지만, 영화 정도는 이거로 볼만했다. 처음에 예전에 꾸벅 꾸벅 졸면서 봤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또 꾸벅~ 꾸벅~ 했다. 이쯤 되면 그 때 피곤한 것 뿐만 아니라 영화 스토리가 내 정서에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보헤미안 랩소디로 바꿔 틀어 보았다. 평소에도 뮤지컬 영화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다. 음악의 완성도가 높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연히도 뭔가 내리는 시간에 잘 맞게 끝날 것 같았다.

그룹 퀸이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나 결국엔 꿈꾸던 자아를 실현하며 좋은 일을 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도록 만드는 장면을 보면 눈물이 주륵 흐를 정도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다. 열정을 쏟아내는 것이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지는 지 모른다.

평원이 드넓게 펼쳐진 에스토니아


처음 에스토니아에 도착했을 때도 이렇게 넓게 펼쳐진 평원에 드리운 햇살의 매력을 느꼈는데, 탈린을 벗어나니 가는 길 내내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정말 산이 하나도 없는 동네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지역의 지형은 빙하의 침식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한다. 왜 그런 해석이 나오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중간중간 숲이 우거진 지역을 지나칠 때 강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맑은 날씨가 펼쳐졌다. 이래서 일기예보에 매일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구나 싶다.


지나가던 도중에 자전거 뒤편에 일장기를 꽂아 두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계신 분을 마주쳤다. 세계 자전거 여행을 하고 계신 일본인 같아 보였다. 내가 굉장히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인데,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는 나에게 그만한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능력이 특출나지 않는 이상 일을 그만두고 이런 도전을 하기는 상당히 벅찬 일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여정이 이렇게 큰 세계를 오랫동안 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부여되는 역할은 많아지고, 해야할 일도 그에 따라 늘어만 간다. 그렇지만 이런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기보다 그 속에서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자전거 여행 중이신 일본인 분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희망을 채우진 못할지라도, 분명 다른 기회와 다른 방법이 찾아와 만족스러운 기억을 하나하나 더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헛소리를 좀 했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와… 저 아저씨 부럽다! 다.

안녕 페르누!


이번에도 눈가 촉촉해진 채로 보헤미안 랩소디 정주행을 끝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바깥을 바라보니 탁 트인 평원과 길고 긴 숲속을 오랫동안 달리다 드디어 페르누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난다. 페르누에 도착했다.


이런 디자인의 건물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비록 작은 도시이지만, 도시 곳곳이 깔끔하게 잘 관리되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다.

숙소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걸어서 30 ~ 40분 걸리는 곳에 있어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는 좀 부담이 되었다. 또, 곧 해가 지는데 그 전에 페르누의 멋진 바닷가를 보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에 더 신경을 많이 쓴 것은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페르누 강 하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돌담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돌담을 따라 바다로 걸어나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물이 높이 차올라 돌담이 잠기거나, 파도가 세게 쳐서 위험하면 가 볼 수 없으니까.


숙소 예약을 당일 오전에 해서 그런지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런 엄청난 사이즈의 베드가 두 개나 있는 방을 3만원을 내고 혼자서 쓰게 되었다. 킹 사이즈 침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놀랍지만, 그게 또 두 개가 있다면 충격이다.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편안하게 쉬기는 좋았다.

비온뒤 갬, 촉촉하고 따뜻한 도시

짐을 간단히 정리해 두고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페르누에는 2km 넘게 이어진(사실 훨씬 더 긴 것 같다. 해수욕장으로 다듬어진 구간만.) 아주 길고 긴 백사장이 있는데 그곳을 따라 걸어가 페르누 강과 만나는 끝자락에 있는 돌담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바다까지는 걸어서 30분, 돌담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해가 지기까지도 1시간 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서둘렀다.

아, 사진을 찍지 못한 것 같은데, 이곳에는 가로수로 밤 나무를 심어놓은 곳도 꽤 많았다. 그래서 뾰족뾰족 밤송이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위험할 수도 있으니 공무원들이 나와서 미리 가지를 쳐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까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맞았던 비가 여기에도 조금 내린 모양이다. 촉촉히 젖어 있는 조금은 낡아 울퉁불퉁한 길가는 굉장히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카메라를 꺼내 들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거의 오가지 않는 길을 조용히 걸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지금껏 장거리 이동을 하며 유럽까지 도착하느라 어쩔 수 없이 큰 도시 위주로 구경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작고 한적한 나라 에스토니아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끼니 새롭다.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이런 느낌의 풍경을 좋아하는 편이다. 따뜻한 색의 나무와 햇살이 펼쳐지는 곳.

시내를 벗어나 바닷가로 향하는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또는,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지난번에 핀란드에서 본 것과 같이 이쪽 사람들은 개인 체력과 건강 유지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이후 헬스장 같은 시설에 가기 어렵기도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러닝 열풍이 불어 조깅하는 사람들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예전과 비교하면 이쪽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인구 9만 뿐인 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여기에는 또 워터파크가 있었다. 옆으로는 객실 수가 꽤나 많아 보이는 리조트 같은 시설도 보인다. 왜 여기가 여름철에 피서객들로 붐비는지 이해가 된다.


지나가는 길에 이런 정글짐 같아 보이는 놀이기구를 만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는 놀이터에 비해 규모가 엄청 컸다. 애들 용이 아니라 성인용인가? 만약 어린이용 놀이터라면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분명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것일테다(?!?!?)


점점 바닷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저 멀리서는 이제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쪽에는 데크로 된 길이 놓여 있는데, 뭔가 우리나라의 순천만 습지 공원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근데 페르누 해안가도 갯벌이 펼쳐져 있나?? 궁금해졌다.


공중에 붕 떠있는 데크로 걸어가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 구경하는 느낌이라 좋다.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데크를 지나치고 갈 수 없었다.

정말 이렇게 보니 순천만 습지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탐조 전망대 같은 시설이 왜 있는지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뭔가 철새 도래지의 분위기가 난다 ㅎㅎ


해안가에 형성된 습지에는 갈대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거 정말 순천만 습지에 온 것 같잖아! ㅎㅎ

층층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파도가 있는 해변


데크 길을 빠져나오니 바로 해변에 도착했다. 백사장이 있는 해변은 뻘 같은 지형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우리나라 바닷가 같은 곳을 가 보면 해안가로 파도가 쏴- 하고 몰아쳐야 하는데, 페르누의 바닷가는 그것 보다 훨씬 더 얌전했다.


조금 걸어나왔지만, 아직까지 질척거리는 뻘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여기 해수욕장이 백사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서해안의 몇몇 해수욕장 처럼 갯벌로 이루어져 있는건가 싶었다. 보기에는 딱 그래보이지 않은가? 보기에는 굉장히 질퍽질퍽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땅이 단단해서 놀랐다. 말로 쾅쾅쾅 밟아 보고, 제자리 뛰기를 몇 번 해 보았는데도 땅이 꺼지거나 푹 빠지지 않았다. 잘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갯벌이 형성되는 건가 싶었다.


바다는 햇빛을 막고 있는 구름을 뚫고 멀리서 내리 꽂히는 따뜻한 빛깔을 받아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여기서 오늘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불과 하루,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곳인데, 어떻게 기회가 닿았다. 예정과는 다르게 이곳을 찾게 되어 너무 좋았다.

저렇게 감시 탑 같은 것이 있는 걸 보면 여름 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인기 있는 곳이겠구나 싶었다. 아니면 군사시설인가?


그런데 이건 뭔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해조류 같은 것이 나타날 수 있으니 수영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저 한켠에는 간의 탈의실 부스까지 만들어 두었으면서??
시즌마다 다른건가? 궁금하다.


바닷물이 그렇게 깊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바다 바깥쪽에 흙이 드러난 부분도 보이고, 파도도 휘몰아치기보다 멀리서부터 층층 갈라지기 시작해 천천히 밀려 들어온다.
아! 여기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발트해는 내륙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 바다라 강물은 많이 들어오지만, 다른 바다와 물이 섞이기 어려워 염도가 굉장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북극만큼 춥지 않아도 가끔은 바다가 어는 경우도 있다고.
수질이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한 방울 손가락에 찍어 바닷물 맛을 보았다. 역시나 소금기가 우리나라의 바다에 비해 훨씬 적다!!
이 생각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바다를 만날 때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쪽 지역을 여행하면서 해변에 갈 때마다 바닷물을 한 두 방울씩 맛 보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은 활동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의 뇌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페르누에서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이 모습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진을 크게 두 장 준비했다.


이렇게 얇은 판이 하나씩 갈라지는 듯 한 파도가 해질녘의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밀려 오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길게 펼쳐진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스스르 밀려 오는 파도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금빛 물결이 밀려 오는 것 같다!
나중에 에스토니아를 여행하게 될 사람이 있다면, 꼭 이곳에서 일몰을 구경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경치 중 Best 정도로 꼽아도 될 정도였다.

실제로 본 연흔!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 보니, 해변이 끝나는 페르누 강 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꽤나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에서 퇴적암에서 나타나는 구조에 대한 내용을 배울 때 “연흔”이란걸 알게 되었다. 근데 그 당시로썬, 어떻게 물결이 친 흔적이 퇴적암에 남게 되는지, 왜 이것이 강한 증거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눈 앞에….


이런 지형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찰랑찰랑 거리는 얕은 파도가 밀려오는 듯 한 무늬가 남은 모래사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단단해서 발로 밟는다고 해서 쉽게 무뎌지지 않았다. 이제서야 “아…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ㅋㅋㅋㅋ
이렇게 실제로 마주하니 정말 반갑고 신기했다. 나름 중학생 시절에 지질학 같은 것에 관심이 생겨서 도서관에 가서 굉장히 많은 책을 살펴본 경험도 있고 고등학교 때 정말 재미있게 공부한 경험도 있다. 아마 내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지질학을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페르누 돌담 방파제 따라 걷기


페르누에서 볼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가장 특이한 것이 이것이었다. 뭔가 해변과 수직인 방향으로 가늘게 쭉 뻗어가 있는데, 뭔가 싶었더니, 페르누 강 하구를 따라 길게 놓인 방파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던 방파제와는 좀 다르게 비교적 작은 바위들도 직접 하나 하나 쌓은 느낌의 방파제였다. 이걸 따라 바다 저 멀리 나가 보고 싶어 여기까지 오는 것을 서둘렀다. 혹시나 해가 져서 주변이 잘 안 보이거나 그러면 곤란하니까!

울퉁불퉁한 돌담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갔다.


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돌 겉면에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와 연도가 표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될 때, 교역을 원하는 사람들은 돌을 가져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넓게 펼쳐진 갯벌을 메우는 데 기여해야 하는 정책이 있었던 것처럼, 이것도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 건설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20분 넘게 걸어왔는데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작 1.5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데 왜 끝이 안 보이냐고? 왜냐면 이 돌담으로 된 방파제를 걸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드벤쳐”같은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누가 구글 지도 리뷰에 써놨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어드벤처를 즐기기 위해 걸음이 사뿐해지는 쇼팽 왈츠를 틀어 두었다. 사실 처음에는 베토벤 소나타를 틀었다가 너무 엄근진해지는 것 같아서 장르를 바꿨다. ㅋㅋㅋ


발 밑으로 물이 찰랑찰랑, 쏴아~ 쏴아~ 하는 소리 들리고, 가끔 파도가 센 것이 들어오면 돌담 위쪽으로 물이 튀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돌들이 잘 고정되어 있지 않아 건들건들 하는 경우도 있었다. 돌 모양이 뒤죽박죽이고 배치도 제멋대로라 걸을 때 굉장히 집중해야 한다. 돌 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은 기본이고 내가 어느 돌을 밟으며 지나갈 지 최소 서너개 이상은 미리 봐 두고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 시원찮은 돌을 만나서 돌아가야 하는 수가 있다. ㅋㅋㅋㅋ
잘못 하다가는 바로 옆 바다로 풍덩 하는 수가 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방파제의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다. 처음 건설할 당시부터 이랬는지, 아니면 베네치아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끝이 보일 정도로 걸어나가니 방파제와 수면의 높이 차이도 상당히 낮아졌다. 그리고 바로 앞 부분부터 돌에 물기가 많은 걸로 보아 이쪽 부분은 파도가 많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내 안전을 담보로 저 끝까지 들어가는 것 무모한 행동인 것 같아서 여기를 끝으로 다시 돌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부분만 그런거라면 다행이지만, 조류가 밀려와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면 생각보다 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어서 되돌아 가야한다. 휴대폰도 잘 안 터지는 이곳 바다 한 가운데서 조난당하기 싫으면 말이다. ㅎㅎ
들어올 때의 두 배 속도로 빠르게 해안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돌 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을 좀 스킵 했더니 발걸음을 뗄 때 돌이 덜컹! 하기도 해서 굉장히 익스트림한 경험이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30분 동안 굉장히 멀리 걸어나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페르누 해안가가 얇은 선으로 보인다.
혹시나 바다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수도 있고, 곧 해도 질테니 최대한 빠르게 걸어나갔다.


으아~ 저기 발 밑까지 차오르는 파도를 보자! ㅋㅋㅋ 서둘러 빠져나가야 했다.


그나마 한 번 걸어왔던 길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돌아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돌담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잠시 감상하다가 완전히 빠져나왔다. 새해 첫 일출을 보는 것 처럼 정말 인상적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왕자처럼 의자를 계속 옯겨 다니면서 이 순간에 멈춰 있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또 마주치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페르누 강가에는 굉장히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이 중에는 레저용 요트 같은 것도 많이 보이던데, 개인이 자가용 요트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분이 요트를 물 밖으로 꺼내 차와 묶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았다.


이건 뭔가 러시아에서 많이 보던 횡단보도 표지판 같았다. 소련 시절 만든 표지판일까? 아니면 이쪽 국가들이 많이 채택하는 양식일까? 궁금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페르누를 둘러 보면서 전원 주택은 수도 없이 많이 봤지만 식당과 같은 가게를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다. 아마 식당을 찾기보다는 내가 해 먹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마트를 방문했다. 사실 집 근처에도 마트가 있었는데(3블럭 바깥), 당시에는 내가 그 가게가 마트인 줄 잘 몰랐다. 리투아니아에도 많이 있는 마트 브랜드인 MAXIMA가 있으니, 나중에 이곳을 여행하게 될 사람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집 근처에 마트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버스 터미널 반대편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렀다.


역시나, 파스타는 굉장히 저렴하다. 이런 걸 식당에 가서 먹으면 어떻게 된다? 10배는 족히 더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가 식당 가격이 저렴하고, 식재료 가격이 비싼 편이라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외국에 나오면 이 비용 차이가 정말 드라마틱하다는 사실에 여러 번 놀란다.


면 코너에는 우리나라 라면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둘 다 우리나라에 없는 라면이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아르말리 아저씨가 가져온 한국 컵라면 이름은 분명 “김치 우동”이었을 텐데. 여기서는 “김치 라면”으로 팔고 있다. 생각보다 해외 진출을 위해 시장에 맞게 다각적으로 제품을 새로 디자인 하는구나 싶었다.

채소 코너에서는 이렇게 씨앗 채소도 팔고 있었다. 좀 신기한 형태라 사진을 찍어 봤다.


결국엔 면 코너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베트남 쌀국수 육수 스톡이랑 쌀국수 면을 사와서 끓여 먹었다. 재료는 많이 살 수 없고, 양파만을 사와서 넣었는데, 면도 흰 색, 양파도 흰 색. 뭔가 식욕을 자극하는 그런 비주얼은 아닌 이상한 쌀국수가 되었다 ㅠㅠ ㅋㅋㅋㅋㅋ
옆에 있는 차는 지난 번 북한 식당에서 정말 맛있게 마셨던 우롱차 티백을 사와서 우린 것이다.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하진 못했지만, 상당히 부드럽게 감싸는 맛이 일품인 차였다. 러시아에서도 많이 보이던 Greenfiled 제품을 골랐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 했다. 킹사이즈 베드 두 개가 있는 방에서 잠 드는 것이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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