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2019년 8월 29일

D+4 : 이르쿠츠크행 시베리아횡단철도에 오르다

2019년 8월 29일

오늘의 유일한 할 일은 기차 탈 준비를 하는 것!

기차 탑승 시각이 해질녘이라서 내일도 기차 타기 전까지 여유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내일 만큼은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기차로 약 71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먹을 음식들을 준비해 가야했고, 기차 탑승 절차를 잘 모르니 비행기 타러 공항에 가는 것 마냥 일찍 도착해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늘 늦게까지 자다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짐을 모두 챙겨 숙소를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둔 후 3일간 기차에서 먹을 음식들을 사러 갔다.
며칠에 걸쳐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이기에, 열차 내에 식당 칸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없는 경우도 있으니 기차 티켓을 구매할 때 열차 내 제공되는 시설을 꼭 확인해봐야 한다. 그런데, 식당칸이 있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가져온 먹을거리로 끼니를 해결한다. 아, 이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가 타게 될 기차에도 식당칸이 없었다.

기차 식량 구매하기

71시간, 거의 만 3일을 달리는 기차에서 몇 끼를 먹어야 할 지 생각해 보자. 첫째 날 저녁, 둘째 날 (아침), 점심, 저녁, 셋째 날 (아침), 점심, 저녁, 넷째 날 (아침), 점심. 최대 아홉 끼 분량의 먹을거리를 사가야했다. 아침을 거른다 해도 많은 양이 필요하다. 이틀씩 놔두고 먹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마트를 둘러보며 고민을 한 후에 다음과 같은 물품들을 샀다(혹은 미리 준비했다) : 컵라면, 초콜렛, 물, 차(커피), 빵, 요거트, 치즈 등

컵라면 : 기차에서 먹을 식량으로 많이들 선택하는 것은 도시락 컵라면이다. 우리나라의 모 회사에서 파는 그 도시락 컵라면이 맞다. 다만, 현지화시켜 판매하는 것이라 맛은 모두 다르다. 대략 6가지가 넘는 종류의 맛으로 제공되니, 종류별로 한 두 개씩 사가면 기차에서 라면을 자주 먹더라도 덜 질리게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ㅎㅎ

초콜렛 : 러시아에서 유명한 알룐카 초콜렛이 있는데, 전국 어느 마트를 가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자와 함께 간식거리로 적당한 것 같다.

: 러시아 장거리 여객 열차를 타면 항상 뜨거운 물이 나오는 물끓이개가 있다. 그런데 항상 따뜻한 물을 마시기 그럴 수도 있고, 물끓이개의 물이 다 떨어질까봐(근데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ㅋㅋㅋ) 개인적으로 마실 물을 사갔다. 대략 1인당 2리터 정도의 물을 샀던 것 같다.

기차 화장실에도 수돗물이 나오긴 한데, 먹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을 정도로 수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모양이더라. 그리고 이 물 조차 열차가 출발한지 좀 오래 되면 다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여분의 생수가 있다면 양치를 하는 등에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차(커피) : 객차의 각 칸에 언제나 뜨거운 마실물을 얻을 수 있는 물끓이개가 마련되어 있다. 차장님께 부탁드리면 (러시아 철도청 로고가 그려진) 찻잔과 숟가락을 빌릴 수 있으니 차나 커피를 가지고 간다면 쉽게 즐길 수 있다. (영어가 안통한다면 “차슈카”라고 말씀드리면 준비해주신다. 어디까지나 “대여”이기 때문에 가끔 좌석 번호를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다. 또, 공용이라서 세척이 불량한 경우도 있으니 잘 확인하고 쓸 것 ㅋㅋㅋ)

: 컵라면과 함께 보관하기 쉬운, 주식으로 먹을만한 식품이다. 빵에 발라먹을 잼도 사간다면 좋을 것 같다. 3일 동안 먹을 것을 생각해서 얼굴보다 더 큰 빵을 두 개 정도 사갔다(2인 기준).

이번에 산 음식을 찍은 사진은 없는 것 같은데, 나중에 다른 사진을 찾으면 올려 두겠다.

Arbat 거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휴식

Arbat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잘 정돈된 번화가인 Arbat 거리가 있다. 이 거리를 따라 쭉 분수도 설치되어 있고, 벤치도 있고, 여러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 나와서 구경하거나 쉬기 좋다. 그리고 이 거리의 끝은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양 공원이랑도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이 참 많았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한국어로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몇 초 안에 할 수 있을 정도다. 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위쪽 사진에도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직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거의 네 시간이 남아, 이곳에 잠시 앉아 주변의 분위기를 느껴 보았다.

예술 활동 자체가 주는 멋보다는 이들의 열정에 더 큰 관심이 간다

Arbart 거리를 지나다 이렇게 스케치를 하시는 분이나 락 음악을 하시는 분을 보았다. 그 분들이 그린 그림, 연주한 음악이 주는 재미보다는 어떤 일이라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다. 사실, 아이유 10주년 콘서트에서 조차 아이유를 직접 본다, 라이브로 노래를 듣는다 이런 것 보다 체조 경기장 무대에 설 수 있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길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러면서 본인이 어떻게 살지 고민해보았다. 항상 관점이 영 이상한 곳을 향한다. 뭔가 이상하다.

일찍 기차역에 도착해 기다리기

기차 탑승 절차를 잘 몰라서 기차역에 세 시간 전에 기차역으로 향했다. 사실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무거운 짐을 다 챙겨 왔기 때문에 특별히 더 할만한 일은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두 종착역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과 모스크바에 있는 야로슬라브스키 역. 비슷한 디자인으로 지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 역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역이다. 다른 한 종착역은 모스크바로,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 역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두 종착역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먼저 지어졌던 야로슬라브스키 역의 디자인을 모방해 지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철도 노선이 시작하고, 끝나는 역이라는 의미가 덕분에 기차를 타지 않는다 해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구경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기차에 오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참 감사했다.

러시아 철도역에서는 역에 들어가고, 기차에서 내릴 때 소지품 검색을 한다. 어딜 가나 짐 검색을 했던 중국이 생각났다. 그런데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는지는 몰라도 짐 검색이 그렇게 꼼꼼하진 않은 것 같다. 때로는 실수로 금속 물체나 전자기기를 따로 빼지 않고 검색대를 통과해도 아무 탈 없이 지나간 경우도 있다. 반면 아주 드물게, 가방을 열어보자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마저도 꼼꼼히 보진 않는다. 이것도 옛 사회에서 행하던 절차가 이어져 내려올 뿐, 이제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기차역으로 와서 발권한 티켓, 산 음식, 배낭

e-티켓을 기차역 창구에 보여주거나 간혹 가다 있는 셀프 체크인 기계를 이용하면 실물 티켓으로 교환받을 수 있다. 그러나 e-티켓으로 기차 탑승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실물 티켓을 소장하고 싶은 목적이 없다면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실물 티켓에서 열차 번호나 좌석 번호를 확인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ㅋㅋㅋㅋ)
저 티켓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픽토그램이 나와있는데, 저걸 참고하면 열차 내에서 어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티켓을 간단히 해석하면, 짐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탈 수 있고 에어컨이 없으며 식당칸이 없다는 거다.
3일치 먹을 식량과, 어떻게 어떻게 꾸려 나온 내 배낭을 옆에 내려두고 쉬었다. 기차 출발하기 두 시간 전이었다.

아주 넓은 러시아 땅, 극히 낮은 시베리아의 인구 밀도 덕분에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는 인터넷이 거의 안 된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 때를 대비해 미리 음악이나 읽을거리를 미리 다운해두었다. 70시간 넘게 타는 열차에서 지루하다 싶을 때 이용할 생각이다. 인터넷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해서 편하게 잘 쓰고 있다. 인터넷 속도는 우리나라 만큼 빠른 건 아니지만, 또 유의미하게 느리지도 않았다.
그와 동시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휴대폰에 간단히 메모해두고 휴식을 취했다.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신기했기에, 3시간은 금방 흘렀다.

출발 40분 전 쯤 우리가 탈 기차의 플랫폼 번호가 전광판에 표시되기 시작했다. 10분 더 기다렸다 열차를 탑승하러 갔다.


아니? 지난번 입국심사 창구도 홀수 번호만 매겨져 있더니 기차 플랫폼도 짝수는 다 건너뛰고 홀수로만 매겨져 있었다. 언어, 문화적인 이유가 있는걸까? 참 궁금했다.
열차는 참 길었다. 이번에 타야할 12번 객차를 찾아 쭈욱 걸어갔다.
러시아 기차는 탑승할 때 신원 확인을 철저히 한다(음, 현지인의 경우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적어도 외국인은 그렇다). 만약 국경을 통과하는 국제 열차라면 추가로 사전에 비자 문제가 잘 해결되어 있는지 꼼꼼히 체크한다(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러시아에서 국제 열차를 탈까.. 흠..).

기차 탑승에 문제가 생기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티켓과 여권상의 신원 정보 불일치로 태워줄 수 없단다.
ticket
위의 사진은 e-ticket 상의 예약 정보다. 표의 오른쪽 위의 칸에 키릴문자로 적힌 부분이 나의 이름이다. 알파벳으로 적자면 SEUNGMIN H.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사실 여기도 좀 해프닝이 있었다. 한국에서 기차표를 예매할 때 영문으로 이름을 입력하려고 하니 계속 입력이 안 되는거다. 설마 이걸 키릴 문자로 넣어야 하나 싶어서 키릴 문자로 넣으니 또 입력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줄 알고 소리 나는 대로 바꿔서 넣었다. 근데, 알파벳이 입력이 안 되는 현상은 일시적인 오류였던 것!
문제는 여권에는 내 이름이 알파벳으로 적혀 있지만, 티켓에는 키릴로 적혀 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러시아 입국 때 입국 심사관이 기록한 나의 키릴 문자 성명과 티켓상의 정보가 일치하지도 않았다. ㅋㅋㅋㅋ 신원 확인을 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차장님께서 러시아어로 뭐라뭐라 하셨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손짓 발짓을 적당히 살펴서 이름이 다르게 적혀있어서 탑승이 안된다는 거구나… 싶었다. (뇌피셜이다) 실물 티켓(에는 여권 번호가 없다)만으로는 내가 진짜 티켓 상의 이 사람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터라 여권과 티켓을 가지고 역의 사무실로 향하셨다. 아, 이러다 기차를 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조금 걱정하던 중 12번 객차 문 앞에 서 계셨던 아저씨를 만났는데, 태국에서 오셨다고 했다. 이르쿠츠크로 간다고 하니 아저씨도 우리와 함께 한다고 그러셨다. 이를 시작으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태국 아저씨께서 차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러시아어도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느긋하고 태평한 마인드에서 나온 거지 절대 그런건 아니었다. ㅋㅋㅋㅋㅋ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차장님께서 돌아오셨다. 그런데 어쩌나? 분위기를 보면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영어로 아무리 물어 봐도 알아 듣지 못하는 러시아어만 돌아온다. 아,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번역기를 켜고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티켓 상의 신원 정보와 내 신분증(여권)의 정보가 일치하지 않아서 탑승할 수 없단다. 친구는 여권 번호로 신원이 확인되었지만, 나는 기차를 예매한 후에 여권을 갱신하는 바람에 여권번호도 달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새로 발급받은 여권에 구 여권 번호 기재 신청을 해서 찍어뒀는데, 잘 확인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산시청에서 구 여권번호까지 찍어 왔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차장님께서 또 러시아어로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못 알아듣고 있자 200루블 이라고 종이에 적어 보여주셨다. 아! 대충 정보 수정료로 200루블을 지불하면 기차를 탈 수 있다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200루블을 드리니 돈을 챙겨 들고 여권과 함께 어디론가 또 사라지셨다. 다른 차장님께서 일단 열차에 타서 기다리고 있으라 하셔서 열차에 올랐다. 이런! 열차 출발 10분 전인데….

여권을 돌려받지 못한 채로 출발한 기차

열차 출발 시각이 되었다. 객차가 정말 많이 달려 있어 가속력이 모자랐는지, 아무런 기척 없이 슬금슬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라, 기차가 출발했는데 아직 여권을 돌려받지 못했다. 탑승자 정보 변경 도중에 기차가 출발해버려 내 여권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남겨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런데 출발했으니 어떻게 하겠나! 만약 여권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남겨졌다 해도 기차를 세워서 내릴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일이 잘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여권 없이 얼떨결에 기차에 탔고, 그대로 곧 출발했다. 저녁으로 먹은 커피와 빵

첫 열차는 2등석을 선택했다. 이 열차의 경우 2등석과 3등석의 가격 차이가 다른 열차에 비해 얼마 나지 않아 2등석으로 선택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구형 객차라, 신형 객차 3등석보다 퀄리티가 떨어지긴 했다. ㅋㅋㅋ
2등석은 한 객실에 4개의 침대가 설치되어 있다. 1층과 2층 각각 두 개씩. 그리고 잠 잘 때 필요한 두꺼운 요 두 개가 있고, 탑승하고 나서 나눠주는 세탁된 새 린넨을 끼워서 사용하면 된다.

그래도 초조한 마음은 버릴 수 없었는지, 준비한 빵에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는 것도 마음이 썩 편치 못했다. 그러던 중에 태국 아저씨가 우리칸에 놀러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여권을 못 받은 채로 기차가 출발해 걱정하고 있는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나를 보고 놀리셨다. ㅋㅋㅋㅋ 그러고는 다시 잘 될 것이라고 위로(?)해 주셨다.
영어가 잘 되셨던 건 아닌데, 적당히 들리는 단어 몇 단어를 이용해 초월번역 해서 다시 이게 맞냐고 물어보는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허걱!)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 세계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여행중이셨다. 러시아를 방문한 것도 이미 여러 번이라고. 이번에는 울란-우데에 가신다고 한다.
여권을 못 받은 채로 별 문제 없을거라던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 아저씨는 영국에서 3000불을 소매치기 당한 적도 있는 굵직한 경험으로 중무장하신 분이었다. ㅋㅋㅋㅋㅋ

아저씨도 이렇게 말씀해주시는데도 나는 내 여권 문제를 빨리 확실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서 차장님께 가서 번역기를 이용해 여권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는지 여쭤봤다. 그러더니 별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자리에 가서 기다리면 된다고 하셨다. (아, 물론 영어 20퍼센트, 몸짓 20퍼센트를 이용한 초월번역이다 ㅋㅋㅋ)
그런데, 한 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다시 가서 여쭤봤더니 정확히 똑같은 답변을 주셨다. 그러곤 “짜씩. 그렇게 조급해 할 필요 없어~”하는 눈빛을 날리셨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돌아온 내 여권

그 이후로 한 시간을 더 기다렸을까? 제복을 차려 입은 분께서 나를 찾아 오셨다. 아마 열차에 탑승하신 경찰 혹은 수석 승무원이신 것 같았다. 손에는 내 여권이 들려 있었다. ‘아, 다행이다. 그래도 여권만 혼자 남겨지진 않았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내 옆자리에 앉아 다시 한 번 나의 여권 한 면 한 면을 다시 체크했다. 혹시나 구 여권 정보(예매할 때 등록했던 정보)를 확인하고 싶으실까봐 파본 처리된 구 여권도 보여드렸다. 보아하니, 이미 별 이상 없음이 확인이 다 되었고 돌려주러 오신 김에 한 번 더 살펴보시는 것 같았다. 이미 기재된 구 여권번호를 보신 것 같으니.

드디어 여권을 받았다! 돌려주시면서 몸짓으로 “어어~ 너 큰일날 뻔 했어~ 잘못했다간 교수형을 당하거나 총살 당했을지도 몰라~ ㅋㅋㅋㅋ”하면서 씨익 웃으며 장난치고 돌아가셨다. 러시아의 농담은 이런 스타일인가 싶었다. 러시아 사람들(특히 남자)이 웃는 것을 보는 것이 드문걸 생각한다면, 그 분의 미소는 마치 “Welcome”의 의미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내 여권에 관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마음 놓고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주는 새로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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