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9 일차, 2019년 9월 22~23일

오늘의 주요 이동 경로

오늘은 야간 기차를 이용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려고 한다. 도시는 1200만, 600만이 거주하는 러시아의 제 1, 2 도시라 이 사이를 잇는 기차 편이 매우 많다. 고속열차 “삽산”으로 가면 약 4시간 정도 걸리고, 일반열차로 가면 약 9~10시간 정도 걸린다.

D+28~29: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야간열차(D+28~29)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야간 열차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역시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워낙 큰 나라라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이들 두 도시는 가까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600 ~ 700 km 정도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도 더 먼 셈이다.

우리나라의 서울, 부산에 해당하는 도시인 만큼, 이들 도시 사이에는 고속철도 “삽산”이 운영되고 있다.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다?

러시아에는 “모스크바에는 레닌그라드(现. 상트페레르부르크) 역이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모스크바 역이 있다”는 농담을 한 번 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해괴한(?) 역명은 철도 부설 당시에는 해당 노선의 반대편 종점을 이름으로 붙이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모스크바에 있는 “카잔” 역은 카잔까지 가는 노선이 출발하던 역이고, “야로슬라블” 역은 야로슬라블까지 가는 노선이 출발하던 역이고, “레닌그라드” 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역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그 말은, 각 지역으로 가는 기차가 서로 다른 역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역은 건물과 플랫폼은 따로 있지만 모두 한 지구에 몰려 있어, 설사 잘못된 역을 찾아왔다 하더라도 길 한 두 번만 더 건너 걸어가면 금방 올바른 곳으로 찾아갈 수 있다.

야로슬라블 역


만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운행하는 직통 열차를 타고 왔다면, 이곳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하게 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여러분이 아는 것 이상으로 노선과 운행 열차의 조합이 다양하다! 현지에 도착해 알게 된 좋은 정보이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을 쯤(2019년) 국내 유튜브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vlog라는 컨텐츠가 많이 올라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곳 모스크바까지 7박 8일을 기차 타고 오시는 분도 계시는데, 개인적으로 기차를 오래 타더라도 쭉 러시아만 달리는 기차만 타는 여정보다 여러 번 환승하며 중앙아시아 등의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편이 훨씬 더 색다른 경험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확 달라지는 새로움이 있다.

카잔 역


우리가 모스크바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이 역이다. 만 24시간의 굶주림에 지쳐 KFC만 정신없이 찾느라고 주변을 구경하는 걸 놓쳤는데, 이제야 다시 본다.

레닌그라드 역

이곳이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다. 처음에는 광역 전철(?) 개찰구를 입구로 착각해 헤매고 있다가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입구에 이를 수 있었다. 러시아 기차역에서 볼 수 있는 느낌의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야간 열차의 운행이 많기 때문에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의 매 시간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지금은 11시가 조금 넘은 때라 세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게 된 이유는, 그게 가장 저렴하기도 했고, 아침에 한 두 시간 일찍 도착하는 것은 생각보다 의미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2층 한 쪽 구석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2시 20분에 출발하는 우리 열차가 전광판에 뜨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지역의 역에 설치된 구형 전광판과는 달리 영어로도 번갈아가며 표시해 주었다. 우리는 키릴 문자를 읽는 데 불편함은 없지만,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큰 배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떠나게 된 기차 여행

역에서 별 다른 할 일 없이 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무료한 일일 수 있다. 두 시간 쯤 지나서 근질근질함을 이기지 못하고 플랫폼으로 나서게 되었다. 마침, 전광판에는 우리 기차의 플랫폼이 막 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짐 검사를 받고 플랫폼으로 입장했다.

열차를 탈 시간이 다가와 미리 플랫폼으로 나가 있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배낭을 벗어두고 기다렸다.

그러나 기차는 아직 플랫폼으로 들어오지 않아 무거운 배낭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기차가 들어왔다. 그러나 문이 열리기까지 또 시간이 걸렸다. 이제 막 가을로 넘어가고 있는 모스크바의 새벽은 쌀쌀했다. 입으로 호호 불면 김이 나오는 정도의 날씨였다.

지금껏 타 왔던 러시아 열차들에는 각 칸마다 뜨거운 물이 계속 나오는 온수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걸 각 칸마다 연료를 때서 데우는 것 같았다(요즘 객차는 전기로 데우려나?). 객차 안 온수기는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는지 객차의 굴뚝에서 연기가 폴폴폴 났다. 기차 안쪽에서는 승무원께서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셨다. 승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나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열차 1층 침대 밑에 짐을 넣으려고 침대를 잠시 접어 올리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잘 올라가지 않았다. 뭔가 지금까지 봐온 것과 다른 방식인 것 같았다. 우리 뿐만 아니라 주변 승객들도 열심히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도, 다들 낑낑거리다 문제를 해결한 모양이다. 우리 침대는 바로 반대편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조금 도와주셨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것을 잘 접는 방법을 모르는 채로 남게 되었다.


난데없이 웬 화장실 사진인가 싶겠지만, 이정도의 시설은 러시아 침대 열차중 탑급에 속한다. 물도 막힘 없이 콸콸 나온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최신 시설이다. 모스크바에 올 계획이 있고, 러시아에서 침대 기차 여행을 하고 싶다면 무조건 이 노선에 탑승하길 바란다. 좋은 열차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직전에 탔던 끔찍한 카자흐스탄 기차를 떠올리면 웃음만 나온다. ㅎㅎ

어제 오전부터 시작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종일 걸어다니면서 소나기도 맞고 새벽 두 시까지 기차를 기다렸던 탓인지 매트리스에 린넨을 씌워 자리를 만들고 눕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최고로 상쾌했던 기차에서의 아침


눈을 뜨니 따사로운 햇살이 기차 안을 드리웠다. 꽤 많이 피곤했는지 간밤에 한 번도 뒤척이지 않고 푹 자다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내가 그토록 편하게 잘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음을 깨달았다. 기차의 흔들림이 하나도 없었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는 “삽산”이라는 고속열차가 지나다닌다. 둘 사이를 오가는데 대략 4시간 정도가 걸린다. 보통 철로는 휘어짐 방지를 위해 레일 사이에 조그만 틈새를 두는 방식으로 설계하지만 고속철도는 이음새 없이도 휘어지지 않도록 설계한다. 그 선로 위에 일반 열차가 함께 다니는 방식으로 운행되는지라 기차가 정말 얼음판 위를 달리는 듯 한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리듬 타듯이 덜컹덜컹에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끔찍한 기차를 타고 힘겹게 모스크바에 왔던지라 그 느낌이 더욱 새롭다.

아간열차에서 하룻 밤을 보내고 일어나면 평온하고 아름다운 숲이 기차를 감싼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창밖을 내다보았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숲이 기차를 감싸고 있었다. 비록 기차에 타고 있지만 오솔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맑은 날씨라 그런지 굉장히 반가웠다.

이것이 아까 말했던 러시아의 고속열차 “삽산”. 기차표를 예매할 때 이 열차의 가격을 보게 되었는데 어마무시하다. 체감 상으로 KTX 가격의 두 배를 넘는다. 게다가 러시아 물가가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낮음을 감안하면 더 살인적인 가격인 것이다.
서둘러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이번에도 야간 열차를 선택했다. 일반 열차가 많이 느린지라, 빠르게 가는 고속열차를 세 대 정도 보내주고 다시 출발했다.
이런 데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30분 넘게?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보통 장거리 지역 이동을 하면 하루가 다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야간 열차를 타면 이렇게 아침이나 오후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니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다.
다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는 피곤함이 가중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신선함은 피곤함과 무관하게 그 지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는 편이다.


“가을 하늘 높고, 구름 없다”는 말은 이런 날씨를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플랫폼 천장 사이로 보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표지판이다.
“왔구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역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역 내부의 모습이다. 플랫폼에서 역사로 들어오면 이런 모습이 펼쳐진다.


엄청나게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러시아/유럽의 철도망이다. 엄청나게 많은 노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노선을 이리 저리 왔다갔다하는 매우 많은 종류의 열차들이 이곳을 다닌다. 그 스케일은 상상 이상이었다.
노선과 운행 열차 종류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달랐다.

우리가 이미 다녀온 지역이나, 이름이 친숙한 지명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상쾌한 날씨, 상쾌한 하루


기차에서의 꿀잠, 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오랜만에 보는 쾌청한 날씨 덕분에 마음이 굉장히 가벼워졌다. 고풍스러운 건물로 뒤덮인 이 도시와 만날 준비가 벌써 다 되었다! 서둘러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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